작년 4월 납품비리 이후 한수원 13번 이사회 보니…

2013년 06월 05일 09:44


[동아일보] [멈추지 않는 비리, 멈춰선 원전]‘재발방지’ 딱 한번 논의외엔 임금인상등 잇속 챙겨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들이 연루된 원자력발전소 납품비리 사건이 터진 지난해 4월 이후 한수원 이사회는 13번 열렸다. 하지만 여기서 논의된 많은 안건 중에서 비리 재발을 막기 위한 안건은 ‘조직개편 방안’ 단 한 건뿐이었다.

그사이 한수원 이사회는 사장 및 임원의 보수를 2.89%, 직원 임금을 3.4∼3.5% 올렸다. 또 부사장 직제를 신설했으며, 직원들의 복리후생 증진과 사기 고취를 위해 순이익 144억 원을 추가로 사내복지기금에 적립하기로 의결했다.

최근 2년 사이 터지고 있는 원전 관련 사고와 비리에 단골로 등장한 공공기관이 한국전력의 자(子)회사인 한수원이다. 그런데도 사고, 비리를 막기 위한 한수원의 자체 정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전 가동 중단 사태를 초래한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는 영세 인증기관에서 벌어졌지만 비리의 근원은 원전 시장에서 ‘슈퍼 갑(甲)’의 위세를 떨치는 한수원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원전 부품 감리를 맡은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 한전기술 출신들이 진출해 있는 부품 검증기관 등으로 이어진 커넥션이 한국 원전산업의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그들만의 리그’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크고 작은 고장, 원전 비리가 연이어 터진 뒤에도 한수원은 사고 및 비리 재발 방지보다 임직원들의 잇속을 챙기는 데 바빴다.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해야 할 사외 이사들도 이런 행태에 눈을 감은 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이사회 구성을 보면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수원 이사회는 내부 인사 6명, 사외 이사 7명으로 구성돼 있다. 겉으로 보면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외 이사 중 변준연, 구한모 이사 등 2명은 한전의 전직 임원이다. ‘범(汎)한수원’ 인사가 반을 넘는 구조인 셈이다.

2명은 정치권 출신이다. 이상록 이사는 한나라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을 지냈고, 이중원 이사는 서청원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산악모임 간부를 지냈다. 나머지 이사들은 대학교수 2명과 전직 기업체 대표 등. 이들 역시 원전 전문가는 아니다. 원전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기업 이사회가 내부 인사와 낙하산 인사, 비전문가들로 채워져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사외 이사 7명 중 한전 출신인 변, 구 이사와 이상록 이사 등 4명은 각각 올해 1월과 4월에 임기가 만료됐지만 이사직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또 6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 이사가 2명이지만 한수원은 사외 이사 공모 절차를 밟지 않고 있다. 6월 말이 되면 사외 이사 7명 중 6명의 임기가 끝나는데도 선임 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크고 작은 비리가 발생한 최근 2, 3년 동안 이사회에 참여했던 사외 이사들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자리를 유지해 주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한수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사외 이사들은 월 300만 원 정도의 보수를 받는다.

○ ‘원전 마피아’ 득세하면서 자정 능력 잃어

업계에서는 한수원이 자정 능력을 상실한 주된 이유가 ‘원전 마피아’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수원 직원들은 원전이라는 특수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동업자 의식이 유독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공기업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까지 결합해 마피아 조직을 연상시키는 조직 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발생한 고리 원전 1호기 정전 은폐 사고를 조사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는 “직장 상사에 대한 과도한 존경심이 만연해 조직 운영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라고 한수원의 조직 문화를 꼬집었다.

여기에 특정 학맥의 원자력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배타적 전문지식을 무기 삼아 이 분야의 요직을 독식하면서 뿌리 깊은 ‘먹이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원자력공학과를 운영하는 대학은 서울대와 KAIST, 경희대, 한양대 등 9곳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원전 운영과 감시 업무를 하는 고위 간부는 주로 특정 2, 3개 대학 출신이다. 특정 대학 출신들이 원전 시장 최대 발주처인 한수원과 원전 설계 및 부품 감리기관인 한전기술과 관련 기업 등의 요직을 차지하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구조가 고착화돼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전을 발주하는 한수원의 퇴직자가 원전 업계로 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한수원 퇴직자를 영입한 13개 원전 관련 업체가 201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한수원과 맺은 계약 금액은 총 1조6785억 원에 이른다. 원전 부품 검증업체에 자격인증을 해주는 대한전기협회에도 한수원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불량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최근의 원전 중단 사태를 초래한 새한티이피의 대주주와 감사 등이 원전 부품 승인권을 가진 한전기술 출신들이라는 점은 이들의 ‘공생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전기술 출신들이 밖에 나가 세운 회사에 원전 부품의 승인을 받으려는 업체들이 몰리도록 한전기술 측이 사실상 지원해 왔다”고 말했다.

결국 원전 부품 공급시장에서 한수원과 한전기술, 한수원 출신이 있는 대한전기협회, 한전기술 출신이 주축인 검증기관이 형성한 커넥션이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을 낳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원전 내부자들끼리 이권을 나눠 먹는 구조여서 내부 비리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면서 “원전 사업의 세부 예산과 납품, 하청 구조 등을 낱낱이 공개해 이런 비리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황진영 기자·김유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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