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연료전지 보급의 성공 사례

2016년 02월 24일 16:17

세계 각국은 수소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하루빨리 핵심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에 힘쓰고 있다. 다만 아직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아, 주로 실증사업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이 와중에 상용화를 향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옆나라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연료전지를 보급하고 확산하기 위한 주요 타깃으로 ‘가정’을 선택했다. 2015년 8월 현재,
일본 내 가정용 연료전지시스템 ‘에너팜(Ene-farm)’의 보급 대수는 총 12만 5000대를 넘어섰다.

 

 

2000년 중후반까지, 일본에서는 ‘All-전화(電化)’가 어느 정도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정에 공급되는 모든 에너지를 전력을 통해 공급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주로 전력회사의 비즈니스모델로서, 가스레인지와 같은 취사용 설비나 온수 공급용 급탕설비의 에너지원을 기존의 가스가 아닌 전기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가스회사로서는 전력회사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셈이었다.


이에 대응해 2008년 ‘에너팜’이 탄생했다. 에너팜이란 가정용 연료전지시스템의 브랜드명이며, 가정용연료전지를 보급하기 위해 가스회사, 연료전지시스템 제조업체, LPG업체 등 관련업계가 한데 모여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All-전화’와 반대로, ‘에너팜’은 가스에너지를 통해 가정에 필요한 전력과 열을 공급한다는 것이 주요 개념이었다.

 

에너팜 실증사업의 효과
일본은 가정용 연료전지를 보급하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기술개발을 거쳐 실증사업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의 주관하에 일본 전역에 걸쳐 총3540대(고분자전해질 연료전지(PEFC) 3307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233대)의 연료전지 열병합발전시스템을 가정에 도입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실증시험을 한 것을 들 수 있다.

 

가정용 연료전지 열병합발전시스템의 안전성 및 기술 검증이 목표이던 이 실증사업은 에너팜 보급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당초 에너팜은 가정 내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있도록 3kW 규모(보통 가정의 전력공급계약 규모)로 만들어 보급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3kW로 만들면 구매비용이 너무 높아져 실제로 도입하려 하는 가정은 극히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이미 계통전력 인프라가 모두 깔려 있는 상황에서 굳이 전력의 100%를 연료전지로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연료전지 열병합발전시스템은 보조전원으로 동작하되, 시스템 가격의 저감을 통한 보급 확대를 고려해 시스템 규모를 0.7kW로 변경하게 된 것이다.

 

NEDO 관계자에 따르면, 가정에 비용 부담을 적게 하고 초기 설치비를 10년 내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판단해 에너팜 보급의 새로운 지침이 됐다고 한다.


또 하나의 예로서 ‘주변부품 공통규격화 프로그램(Common Specifications for Peripherals Program)’을 들 수 있다. 즉 NEDO에서는 연료전지 시스템의 주변부품 비용을 저감하려고 가스회사와 부품 제조업체가 한데 모여 협업을 통해 제조공정을 개선함으로써 가격을 저감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6년에는 41만 엔/kW이던 부품가격이 2007년에는11만 엔/kW, 2009년에는 8만 엔/kW로 낮아져, 전체 시스템 가격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본격적인 보급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교토대 마츠시타 가즈오 명예교수의 집에 설치된 가정용 연료전지 에너팜. - 마츠시타 가즈오 제공
일본 교토대 마츠시타 가즈오 명예교수의 집에 설치된 가정용 연료전지 에너팜. - 마츠시타 가즈오 제공

2009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에너팜은 2015년 현재까지 12만 5000대 이상이 보급됐다(2030년에는 530만 대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 규모가 커지면서 시스템 가격도 줄어들었다. 2009년 당시 300만 엔/kW이던 가격이 최근에는 1/2 이하인 145만 엔/kW까지 줄어든 것이다.

 

보급이 급증하게 된 계기는 역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라고 관련자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까지 에너팜은 가정 내 보조전원 개념이었다. 즉 연료전지시스템이 계통전력에 물려 있었으므로 전력이 끊기면 연료전지시스템도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에서는 전력회사에 의한 계획적인 순환정전이 지속됐다. 구역 내 모든 가정이나 상업용 건물이 1회당 2~3시간씩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가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계통에 접속하지 않는 독립형 에너팜의 판매가 증가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독립형 에너팜은 계통전력이 끊길 경우에도 가동이 가능하다.

 

한편, 일본 내에서는 에너팜에 대한 광고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상용화가 시작된 2009년부터 가스회사가 주도해 TV CF나 옥외 광고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50종 이상의 광고가 전파를 탔다.

 

광고의 효과는 ‘연료전지’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제품의 기능을 인지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일본가스협회가 2013년에 20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92%가 에너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답했으며, 사용해 본 사람 중에서는 38.3%가 만족하고, 47.2%가 대체로 만족한다고 답했다. 즉 일본 국민 사이에서 에너팜 제품의 인지도, 성능과 서비스 면에서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
우리나라에서도 ‘그린홈 100만호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연료전지를 도입한 가구가 1700여 가구에 달
한다. 그러나 전기요금의 절약 효과나 설비의 운전 측면에서 만족을 보이는 소비자는 일본처럼 많지 않다. 오히려 가스요금이 더 늘어나서 경제적 절감효과가 없거나, 구매 후 애프터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해 현재 방치해 둔 가구의 수가 예상 외로 많다.

 

반면 일본의 에너팜 보급은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철저히 관련 산업의 육성을 전제로 진행됐다. ‘가스를 통해 가정에서 쓰는 에너지 모두를 공급한다’는 발상 자체도 사실은 수요를 늘리기 위한 가스회사의 아이디어였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연료전지 제조업체는 가정용에 더욱 적합한 소형 모델을 개발하고자 노력했고, 주택업체는 에너팜을 신축주택에 구매옵션으로 포함시켰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자가발전과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에너팜을 구매했고, 가스회사는 연료전지 전용 요금체계를 도입해 에너팜 사용자들에게 적용시켰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주로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실증실험, 보조금 교부, 부품가격 저감을 위한 R&D 조정에 집중했다. 정부가 철저히 조정자 역할에 그친 것이다. 에너팜의 보급정책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는 정부에 있지 않다. 오히려 가스회사와 주택업체, 연료전지 제조업체로 대표되는 굵직한 산업계가 연대해 구축한, 공고한 산업적 기반에 그 신뢰를 두는 것이다.


기획에서부터 R&D, 실증, 보급에 이르기까지, 일본 에너팜의 보급정책은 자국 내 산업 육성과 시장 확보에 초점을 두어 진행됐다. 우리나라도 단기적인 실적 달성에서 벗어나, 치밀하고 장기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연료전지를 포함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본 콘텐츠는 녹색기술센터에서 발행한 <Green Tech. Horizon> 8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녹색기술센터 손범석 연구원

sonbs@gtck.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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