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바깥에도 문학이 있다

2016년 11월 17일 17:35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 발행한 <SEMA 함께 행복 同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지난 10월 13일 스웨덴 한림원이 미국의 가수이자 시인이며 화가인 밥 딜런(75)을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했다. 스웨덴 학술원은 수상 발표 직후 한 인터뷰에서,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며 "밀턴과 블레이크에서 이어지는 영어권 전통 속에서 위대한 시인이며, 항상 자신을 쇄신하고 새로운 신원을 창조하고 있다. 2천5백 년 전에 써진 호메로스와 사포의 시를 지금까지 읽고 우리가 그것을 즐긴다면 밥 딜런 또한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으면 안 된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노벨문학상이라고 하면 우선 시인과 소설가를 생각한다. 문학보다 대중음악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노벨문학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보고, 문학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노래가사를 문학으로 볼 순 없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당연히 문학만 전념했던 문학가들의 실망감은 컸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계 내에서만 문학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고정관념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분야를 전공한다하면 먼저 형식적 제도와 장르를 구분한다. 철학과 물리학이 전혀 동떨어진 학문이 아닌데 문과, 이과, 세부전공으로 일단 구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도 말했지만, 녹색평론의 발행인 김종철 선생은 문학 바깥에 문학이 있다고 했다. 이미 수십 년 된 이야기이다. 불멸성을 획득한 문학 고전들은 그 당시의 문학 바깥에서 빚어진 것들이었다. 신영복 선생도 '변방에서 새 것이 나온다'고 했다. 신영복의 '변방'이란 도시가 아닌 어디 시골 작업실 같은 물리적 거리가 아니다. 중심에 매혹되거나 휩쓸리지 않고, 주류가 제시하는 질서와 형식 그 너머를 응시하고 상상하고 실천하는 아웃사이더, 비주류들의 사유의 힘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문학주의나 미술주의를 하지 않는다. 주류에 매혹되지 않았고 따라서 포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노래가사가 노벨상을 수상하느냐'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학이 "문학의 본질로서 문학적인 것"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문학가들만 문학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만드는 가수도 문학적인 실천을 통해 더 훌륭한 문학작품을 생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한 차트 1위곡 하나 없는 밥 딜런의 음악성

▲ 밥 딜런이 2010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흑인 인권운동을 위한 음악 콘서트'에 참석해 공연을 하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2012년 밥 딜런에게 '자유의 메달' 훈장을 수여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고,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딜런 같은 거인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에게 밥 딜런은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우리는 그를 깊이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한때 청년문화의 아이콘이었다는 것, 70년대 한국 포크음악이 시작되면서 한대수, 김민기, 양병집 같은 한국의 대표적 포크가수들은 모두 밥 딜런 음악의 세례를 받았다는 정도일 것이다. 밥 딜런은 실로 대중음악의 지성사(知性史)를 일구었다. 그의 가사는 '난해한 현대시'와 같다. 열심히 노력해도 때론 해석되지가 않는다. 1960년대 중반 <Another side of Bob Dylan>, <Bring it all black home>, <Highway 61 revisited>가 연속 발표되었을 때, 미국 각 대학의 영문과에 '밥 딜런 시분석' 강좌 개설이 유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음악계와 학계에서 '딜런 읽기'는 교양필수 과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는 록의 40년 역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스(The Beatles) 그리고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와 함께 최정상의 위치를 점하지만 이들 '전설의 빅 4' 가운데에서도 딜런이 남긴 궤적은 다른 아티스트들과 다르다. 엘비스, 비틀스, 롤링 스톤즈는 그 화려한 전설에 걸맞게 무수한 히트곡을 쏟아냈다. 넘버 원 히트곡만 치더라도 엘비스는 18곡(통산 2위), 비틀스는 20곡(1위), 스톤즈는 8곡(11위)이나 된다.

 

하지만 딜런은 그 흔한 차트 1위곡 하나가 없다. 차트 톱 10을 기록한 곡을 다 합쳐봐야 4곡뿐이다. 그는 대중성과는 별로 인연이 없다. 이렇듯 실적이 미미한 데도 서양대중음악계가 그를 전설적 존재로 떠받드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1950년대 일종의 하위장르인 로큰롤에는 메시지가 없었다. 1960년대 들어서 비틀스가 록 음악의 르네상스를 펼치던 시기에도 대중음악은 의미 있는 가사와 격리된 상태였다. 그때 밥 딜런이 나타났다. 흔히 비틀스가 대중음악의 예술적 기반을 확대했고, 롤링 스톤즈는 형식미를 완성했고, 엘비스는 록의 정체성을 부여했다고들 하는데, 이 세 아티스트들이 서양대중음악의 <외형>를 보여준다면 밥 딜런은 <내면>을 상징한다. 바로 노랫말이자 메시지를 통해 음악의 정신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논문에 등장한 밥 딜런의 노래

밥 딜런이 존경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음악이 곧 당대와 그 세대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딜런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는 그의 메시지를 평생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아간다. 올해 1월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기상학자들이 밥 딜런의 노래에 등장하는 소절을 논문에 인용한 숫자는 163개에 달했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2015년 출간된 자신의 책 제목을 딜런의 노래 제목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nockin' on Heaven's Door)'로 정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과학자들이 딜런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5년까지 쓰여진 생물의학 논문 중 딜런의 노래를 인용한 논문이 213편에 이른다고 한다. 이 조사를 발표한 논문은 <자유분방한(Freewheelin) 과학자들: 생물의학 논문의 밥 딜런 인용>인데 이 제목 역시 밥 딜런의 두 번째 앨범 '자유분방한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에서 인용했다. 가장 많이 인용된 노래는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까(The Times They Are a-Changing)'가 135개의 제목에 쓰였고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이 36개의 논문에 쓰였다고 한다. 이렇게 과학자들이 밥 딜런의 노래를 자신의 연구에 인용하는 것은 1960 ~ 1970년대에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던 학생들이 1990년대 이후 사회의 중추가 되면서 그의 연구논문에 딜런의 문학적 서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겐 낯선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서양 학계의 많은 학술논문은 문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과학저널에 실리는 과학논문들도 문학적인 에세이 형식으로 발표되는 경우가 많다. 구조주의 철학의 장을 연 책의 하나로 손꼽히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일종의 문화기술지 학술서인데도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다. 학술적 표현방식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한국의 학계와 비교하면 부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밥 딜런은 보기 드문 '음악의 주체'였다. 밥 딜런이 걸었던 길은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딜런은 반전 평화의 깃발을 울렸을 때나, 대중성을 추구했을 때나 수동적으로 임한 적은 없었다. 시대와 맞서기도 했고 자신의 예술성에 천착하기도 했다. 그의 세계는 언제나 자신의 의지가 주도하는 세계였다. 음악가이되 음악 너머의 세계를 실천했고, 시인이되 문학 너머의 세계와 대화하며 그의 예술적 세계를 확장해 왔다. 밥 딜런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자신의 세계 너머를 응시하고 상상하며 확장하는 실천력이다.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을만한 유일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상 받을 자격이 없는 인물도 아니다.


 "문학 바깥에도 문학이 있다."
이것이 올해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평수 (문화콘텐츠학 박사 / BCC컴퍼니 브랜딩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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