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팅의 세계, 기초과학이 토대 세운다

2017년 03월 07일 16:52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가 현실 세계로 성큼 다가서고 있다. 구글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을 비롯해 각국 연구기관과 대학이 양자컴퓨터 개발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14년 영국 옥스퍼드대는 5년 내에 상업용 양자컴퓨터를 제작하겠다고 영국 정부에 5,000억 원 규모의 연구비를 신청했다.

 

shtterstock 제공

양자컴퓨터는 0과 1이란 이진법 신호로만 작동하는 현재 컴퓨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 현재의 컴퓨터는 논리회로의 스위치를 켜거나(1) 끄는(0) 방식으로 1비트를 표시하는 데 반해 양자컴퓨터는 물리학에서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다.

양자역학 원리 이용, 슈퍼컴퓨터 능력 월등히 앞서

양자역학에선 서로 다른 상태가 중첩된 값이 확률적으로 존재하는데, 양자컴퓨터에선 이를 큐비트(Qbit)라는 양자비트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0과 1이라는 2개의 큐비트를 쓰면 모두 4가지(00,01,10,11) 상태로 표시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3개의 큐비트로는 8가지 상태를, n개의 큐비트로는 2의 n제곱 수만큼 표현이 가능해져 0과 1로 하나의 비트만 표시하는 일반 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빠르다. 실제로 10개의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는 2의 10제곱의 비트를 갖는 셈이어서, 한 번에 처리하는 정보량이 비트 체계의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크다.

양자컴퓨터는 이런 이유로 슈퍼컴퓨터로도 수백 년 걸릴 연산을 수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학에서 많은 계산량이 필요한 양자 물리학을 비롯해 신약개발, 복잡한 기상 예측에서 월등한 계산 실력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주목받는 쪽은 암호 분야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가 도입되면 신용카드, 온라인 뱅킹 등에 널리 쓰이는 현재의 암호체계를 전면 개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서도 양자컴퓨팅 관련 기초과학 연구 활발

전문가들은 현실에서 쓰이는 양자컴퓨터를 만들려면 최소한 1만 큐비트 소자로 구성된 회로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금의 양자컴퓨터 큐비트는 아주 특별한 소자로만 구현할 수 있다. 영하 273℃의 극저온에서 작동하거나 진공에 가둔 개개의 원자들이 사용된다. 이런 큐비트 회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다양한 기초과학 연구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양자컴퓨터의 개발 연구가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몇몇 대학 연구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무엇보다 연산에 활용하는 전자, 광자, 이온 등의 양자 중첩 현상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고 중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양자계 안의 정보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기술도 요구된다.

지난 1월 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으로 부임한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전자주사터널현미경(STM)을 이용해 단일 원자의 위치와 양자 상태 제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ibs 제공

지난 1월 부임한 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장(이화여대 석좌교수)은 전자주사터널현미경(STM)을 이용해 단일 원자의 위치와 양자 상태 제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STM은 물질의 표면 이미지를 원자 수준으로 볼 수 있는 나노과학 실험 장치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위치한 IBM 알마덴 연구소에서 1998년부터 약 20년간 고체물리학과 광학 연구를 해오다 지난해 한국에 왔다.

하인리히 단장은 지난 2012년 철 원자 12개로 저장장치인 반강자성체를 만들고 1비트를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현재의 하드디스크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저장 기술은 강자성체를 활용하는데, 각 원자의 스핀(자성)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면서 정렬 방향에 따라 1과 0의 신호를 만들어낸다. 반면 하인리히 단장이 개발한 반강자성체는 이웃한 원자의 스핀이 반대 방향으로 정렬하면서 데이터의 기본 단위인 1비트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1비트는 원자 약 100만개가 필요하지만, 이 기술을 사용하면 단 12개의 원자로 이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하드디스크 크기에 100테라바이트(TB) 이상의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수준이다.

하인리히 단장은 2013년에는 구리 기판 위 65개 일산화탄소(CO) 분자들을 하나씩 일일이 옮겨 만든 1분 33초짜리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소년과 그의 원자(A boy and his atom)’로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이 영상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화로 등록됐다. 그는 궁극적으로 양자컴퓨터의 정보 기본단위인 큐비트를 정확히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소재 연구도 중요하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은 일상적인 3차원 세상과 1·2차원 세상에서도 전류가 저항 없이 흐르는 초전도 상태가 생길 수 있음을 규명한 3명의 영국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미래 컴퓨터인 양자컴퓨터의 재료로 사용되는 2차원 자성필름이나 초전도체 박막 등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초를 제공했다.

양자컴퓨터 개념, 물리학자가 고안하다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다. 그는 1983년 양자계를 연구할 때 현재 컴퓨터는 막대한 계산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양자계를 모방한 새로운 차원의 계산도구를 이용하면 결과를 도출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1985년 데이비드 도이치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양자 알고리즘을 제시하고 1994년 벨연구소의 피터 쇼어가 양자 컴퓨터를 이용한 소인수 분해 알고리즘을 잇달아 세상에 내놓으면서 양자컴퓨터는 비로소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념일 뿐 실제 양자컴퓨터 연구는 한동안 이론적 가능성의 확립과 시제품의 실험 제작을 모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실제 양자컴퓨터가 처음 하드웨어로 등장한 건 1995년 미국표준기술연구원(NIST)이 전기장으로 이온을 띄우고 각 이온 스핀을 큐비트로 이용하는 이온 덫 양자컴퓨터를 만들면서부터다. 연구진은 트랜지스터와 유사한 기능을 갖는 게이트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했다.

1998년에는 원자핵 스핀을 이용하는 핵자기 공명으로 양자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하지만 핵자기 공명 방식은 일정시간 이상 지나면 큐비트가 외부 간섭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 이 밖에도 여러 연구진이 광학, 이온, 초전도링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하드웨어를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양자컴퓨터 성능은 일반 컴퓨터 성능에 훨씬 못 미쳤다. 양자컴퓨터로 소인수 분해를 한 최대 숫자는 21에 머물렀다. 소인수분해를 하기 위해 큐비트를 늘릴수록 큐비트를 제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11년 디웨이브 출시, 양자컴퓨터 연구 재주목

2011년 한동안 정체됐던 양자컴퓨터 연구에 다시 불씨를 살린 사건이 일어났다. 캐나다의 디웨이브 시스템사가 128큐비트를 가지는 첫 상용 양자컴퓨터인 디웨이브(D-WAVE)를 선보인 것이다. 2013년에는 구글이 516큐비트를 가지는 ‘디웨이브 2’를 구매하면서 양자컴퓨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구글은 2015년도에도 한층 개선된 1000큐비트의 ‘디웨이브2X’를 도입하기도 했다.

 

미항공우주국(NASA) 에임스 연구센터에 설치된 디웨이브 양자컴퓨터. -NASA 제공

이 컴퓨터에 적용된 양자 어닐링 기술은 큐비트 신호를 처리하는 양자 게이트를 이용하는 범용 양자컴퓨터와는 다른 자연계에서 최솟값을 찾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고안됐다. 초전도체인 니오븀을 이용해 생성된 자기장 방향을 큐비트로 사용하는데 특정 문제에 대해서는 일반 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논란도 불거졌다. 디웨이브 컴퓨터로 다른 특정한 문제를 풀게 할 경우 일반 컴퓨터보다 별로 나은 성능을 내지 못해 완벽한 양자컴퓨터라고 볼 수 없다는 실험결과가 제시되면서 범용적인 양자컴퓨터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디웨이브 이후에도 양자컴퓨터를 실물로 보여주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초전도 회로를 이용해 9큐비트를 가진 양자컴퓨터를 만들었다. 기존 방식들의 장점을 결합한 모델인데다 범용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돼 주목을 받았다. 구글은 올해 안에 49큐비트를 가진 양자컴퓨터를 내놓을 계획이다.

 

2016년 구글이 초전도 회로를 이용해 개발한 9큐비트를 가진 양자컴퓨터. -Muncher Of Spleens 제공

 

구글이 공개한 양자컴퓨터의 속도 향상 결과 그래프. -구글 블로그 제공

지난해 양자컴퓨터 개발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는 수학에서 이론으로 제시된 ‘유사 입자’의 양자 현상을 이용하는 방식을 연구 중이다. 유사입자는 구름에 둘러싸인 입자처럼 거대한 유동에 따라 움직이는 개념이다. 오류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적지만 아직 유사입자 개념을 검증한 적이 없어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꼽힌다.

유사입자와 관련된 연구는 IBS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에서는 1차원 원자도선으로 다진법 기반 전자소자 가능성을 발표했으며(네이처 피직스, 2017. 02)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은 빛의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는 초고속 광전소자를 개발했다(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016. 11).

이렇듯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해 기초과학 연구를 포함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실제 상용화시기를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몇 년 내에 양자컴퓨터를 들고 다닐 정도로 작게 만드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은 양자컴퓨터가 특별한 문제 풀이에만 쓰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도 결국엔 성능이 개선되고 크기도 줄어들면서(가격도 내려가고) 지금 컴퓨터처럼 갖가지 문제 해결에 활용될 것이란 전망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본 콘텐츠는 기초과학연구원의 온라인 뉴스레터 IBS 뉴스레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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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현 에디터

nearb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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