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보다 한발 앞선 스위스 그림젤 연구소

2015년 11월 04일 10:03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얻는 나라는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인 방사성폐기물이라는 과제물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핀란드와 스위스 같은 나라는 원전을 가동하면서부터 또는 원전 가동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영원히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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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나라는 원전의 터빈이 돌기 시작한지 30년이 넘은 2008년에서야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을 만드는 등 더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리시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앞으로 갈 길이 아주 멀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을 위안 삼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외국 사례를 통해 가늠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바로 30년 전부터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영구처분을 준비해 온 스위스의 그림젤연구소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연구에 최적의 장소
전력 수요의 38%를 원자력 발전으로 충당할 만큼 원자력은 스위스의 주요 에너지원이다. 안전에 대한 준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철저한 스위스는 원자력 발전 시작 직후인 1972년부터 방사성폐기물 처리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31년 전인 1984년에 그림젤연구소를 만들어 다양한 지질 연구를 수행하면서 스위스에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을 만드는 데 적합한 장소를 찾고 있다. 그림젤연구소는 스위스 에너지부 직속기관인 방사성폐기물관리공동조합(NAGRA)이 운영하고 있다.

 

스위스 베른에서 남동쪽으로 120㎞ 떨어진 구타넨이라는 알프스산맥 소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그림젤연구소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다. 해발 1700m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입구를 통해 연구소로 들어갈 수 있다. 연구소에 들어서면 방사성폐기물을 담아서 처리하는 전용용기인 캐니스터 모형이 방문객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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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는 외부로 노출된 곳이 아닌 화강암층으로 이뤄진 산 정상의 450~500미터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연구시설이다. 게다가 동굴 입구에서 무려 1km가 넘는 거리의 지름 3.5m 굴을 따라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방이 화강암 바위로 이뤄져 있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을 비롯해 독성이 강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연구하는 데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그림젤연구소는 핵물질이 담긴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직접 투입해 실증실험을 한다. 바위에 지름 10~30㎝의 다양한 크기의 구멍을 몇 백m 깊게 뚫은 다음 핵물질을 집어넣고, 이들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캐니스터에 담아 처리된다.

 

그런데 캐니스터를 저장하는 방법에 따라 폐기물 처리 방법이 달라진다. 그림젤연구소는 캐니스터를 벤토나이트라는 암석으로 감싸고 이를 다시 스테인리스로 마감하며 처리한다. 반면 미국은 캐니스터에 핵물질을 넣고 두꺼운 콘크리트를 덧씌운다.

 

우리나라도 공동연구 진행
1997년 그림젤연구소에서 실제와 같은 규모로 시작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실험은 18년이 지난 올해 실험이 종료됐다. 방사성폐기물 저장용기 2개를 지하 암반에 넣은 뒤 벤토나이트 충전재로 채운 굴에 저장한 다음, 폐기물이 주변의 바위와 충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열효과 등을 알아보는 실험이었다. 과학자들은 고고학자들처럼 한 겹 한 겹 실험장치를 해체하고 표본을 수집하며 폐기물 용기를 회수했다. 수집된 자료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폐기물 영구처리 모델링 결과를 검증하는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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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젤연구소는 30여 년 동안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에 적합한 부지 조사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또 처분장 건설과 지질 방벽 실증과 성능 평가 기술 개발 같은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해왔다. 현재는 전 세계의 20여 개 기관에서 참여해 다양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적합한 연구시설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도 그림젤연구소에서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다. 주요 연구분야는 고준위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법과 부지 선정, 처분시설 건설과 운영에 필요한 자료 수집과 기준 수립 등이다.

 

현재 스위스는 그림젤연구소의 활동으로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 2011년 1차로 6곳의 영구처분장 후보지를 선정한 다음, 올해 초 취리히 노르도스트와 주라 오스트 부지 두 곳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영구처분장 부지선정의 주요 요건은 암반 생성 환경, 장기적 안전성,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 적합도, 지질학적 안전성 4가지다. 환경적 요인이나 주변 시설 조성에 대한 적합도를 주요 평가기준으로 사용하고 ‘정치적인 이유’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후보지 선정은 정부나 각종 단체의 압력 없이 순수하게 연구결과를 토대로 진행됐다.

 

방사성폐기물 처리는 안전이 최우선!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 블레쉬미트 소장은 “6만년쯤 뒤에 알프스 지역에 빙하시대가 다시 찾아오면 빙하가 산을 깎고 지나간다”며 “그러면 수백m 바위 속에 숨겨놓은 방사성폐기물일지라도 지상으로 노출될 위험성이 매우 커져,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소를 최종 영구처분장으로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준위폐기물 실험에 최적의 장소로 알려진 그림젤연구소가 위치한 알프스 산맥은 조산활동이 활발해 땅이 매년 수mm씩 올라오거나 깎이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림젤연구소가 안전한 곳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스위스는 이곳을 후보지로 고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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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는 지하처분연구시설로 그림젤연구소 외에 몬테리연구소가 있다. 그림젤연구소는 화강암반을 이용하고, 몬테리연구소는 점토암을 이용한다. 스위스는 점토암을 자국 내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분에 가장 적합한 지층으로 고려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4년 뒤 고준위 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스위스의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결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2027년쯤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지가 선정돼도 많은 시간 동안 지자체와 주민을 대표하는 시민단체 등이 충분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이해와 협력을 얻는다는 얘기다.

 

그림젤연구소에는 매년 2000명 이상이 방문한다. 이것이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리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안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연구시설을 통해 꾸준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국민들에게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 시설이 안전하게 설치되고 운영된다’는 신뢰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본 기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아톰스토리(http://atomstory.or.kr)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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