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원전으로 돌아보는 원전지역 특산물 (2) 영광 법성포 굴비

2015년 11월 06일 15:18

개다리 소반에 밥 한 공기, 방 천장의 서까래에는 새끼줄에 엮은 굴비 한 마리. 밥 한 술에 굴비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반찬을 대신한다. 몇 끼를 먹어도 굴비는 엮인 그 자리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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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 설화로 친숙한 장면이다. 자린고비는 지독한 구두쇠를 일컫는 말로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청주 금왕읍에 살던 한양조씨 자인고공 조륵의 일화에서 따왔다고 한다. 자린고비의 어원이야 이외에도 여럿 있지만, 자린고비의 정체가 무엇이건간에 굴비를 꽤 좋아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단지 보는 것 만으로도 반찬을 삼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자린고비는 조선조의 설화지만 그 이전인 고려부터도 굴비는 진미로 유명했다고 한다. 고려 순종부터 예종대까지 권신으로서 온 나라를 호령하던 이자겸이 굴비를 임금에게 진상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자겸은 권력을 독차지하려다 영광 법성포로 유배됐는데 이 곳 특유의 방식으로 말린 참조기를 맛보고는 권력에게 목매달던 자신의 과거를 허탈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이상 권력에 매달려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屈非)’라 이름짓고 개경으로 진상했다는 이야기다. 달리 전하는 설화로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몸을 굽히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이러한 일화는 후대에 각색된 것이라며, 조기의 가운데를 엮어 말리다보니 등이 굽었다는 의미로 ‘구비(仇非)’라 불렸다가 굴비로 변형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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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지닌 법성포의 명물
어원이야 어찌됐든, 굴비는 이자겸 이후에도 중요한 진상품 중 하나였다. 맛도 맛이거니와 참조기를 질 좋은 천일염에 절여서 바짝 말린 굴비는 오래 두고 먹어도 특유의 감칠맛을 잃지 않고 상하지도 않아 진상품으로는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참조기는 매년 4~5월이면 알을 낳기 위해 법성포 앞의 칠산바다를 지난다. 이 때의 참조기는 산란을 앞둔 터라 살이 제법 오르고 기름져서 그 맛이 최고조에 달한다. 법성포가 굴비로 유명했던 이유도 봄에 칠산바다를 지날 때가 참조기의 품질이 절정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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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즘은 칠산 바다에서 조기가 거의 잡히지 않는다. 세월에 따라 기후가 변하면서 조기의 움직임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조기는 칠산보다도 남쪽인 추자도 인근에 머물러서 이 곳이 조기의 주요 어장이 됐다. 법성포 굴비는 법성포에서 잡힌 조기로 만든 것은 아닌 셈이다. 추자도는 이를 근거로 자체 굴비 브랜드를 만들어서 ‘추자도 굴비’를 본격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조기의 출신지가 달라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법성포는 굴비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바람이나 온도 면에서 추자도보다는 법성포가 굴비 만들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7~80년대만 해도 조기 어획량 감소에 따라 굴비 생산량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법성포에서만 500 여 개 업체가 20,000 톤 이상을 생산할 정도로 산업이 커졌다. 법성포의 굴비가 특히 유명세를 탄 때는 2011년부터다. 2009년부터 영광군이 법성포를 ‘굴비특구’로 지정하여 관련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 빛을 본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어업생산통계에 따르면, 굴비로 대표되는 수산물 염장 건조 제품의 영광 지역 생산액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37억 원에서 48억 원으로 11억원 정도 올랐지만 2011년에는 법성포 굴비가 널리 알려지면서 1457억 원으로 껑충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후쿠시마 사고의 영향으로 굴비 소비가 한동안 주춤했지만 금세 회복되어서, 2014년에는 496개 업체가 19,500톤을 생산하고 3,5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대한민국 지역브랜드 대상 행정자치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영광의 수산물 가공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냉동품을 따돌리고 이름으로나 수량으로나 지역을 대표하는 수산품으로 우뚝 섰다. 한 마디로 전국의 참조기가 영광에 모여 굴비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셈이다. 명절만 되면 선물용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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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식과 현재의 변화 사이에서
굴비는 말린 생선이라고 우습게 볼 음식이 아니다. 내장을 따고 말리는 명태와는 달리 굴비는 참조기를 손질하지 않고 통째로 소금에 절여 돌로 눌러놓았다가 해풍에 건조하여 말린다. 특히 법성포의 굴비는 법성포와 같은 군에 있는 염산면의 염전에서 난 것만 써서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간하여 말리는 과정을 ‘섶장’이라고 하는데 워낙에 손이 많이 가고 간하는 시간을 조절하기 까다로워서 나름의 노하우이자 영업비밀이라고 할만하다. 습도와 일조량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내장이 고스란히 보존되기 때문에 바람이 약하거나 흐린 날이 이어지거나 습도가 조금만 높아도 상해버리기 일쑤다. 조정에서 중요한 진상품으로 여겼을 만큼 귀한 음식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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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인 7~80년까지도 굴비는 귀한 음식이었다. 참조기 어획량도 점점 줄어들어 해방 이후에는 굴비 제조법이 40여 가구에서만 근근히 명맥을 이어 왔다. 참조기는 성질이 급해 양식도 불가능하니 한동안 귀한 반찬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옛날의 굴비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지금은 반건조 조기처럼 보이는 굴비지만, 저장기술이 발달하지 않던 옛날에는 소금을 듬뿍 치고 시간을 들여 바싹 말려야 굴비가 됐다. 이렇게 말리면 살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를 통보리가 든 뒤주 속에 넣어 보관했는데, 뒤주 속이 서늘한데다 보리의 겉껍질이 굴비에서 배어나오는 기름을 흡수하여 보존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관상의 특징을 살려 옛 굴비를 ‘보리굴비’라 따로 부르기도 한다.

 

옛 굴비는 먹는 방식도 달랐다. 지금이야 굴비를 간고등어 마냥 기름에 튀기듯 굽거나 석쇠에 직화로 굽는 방식으로 많이 먹는 편이지만, 옛날에는 마치 북어나 황태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했다. 굴비를 먹기에 가장 좋은 때는 여름이다. 초여름까지 잘 마른 굴비를 더운 한낮에 쪽쪽 찢어서 참기름 두른 고추장과 함께 먹는 것이다. 굴비에 간이 잘 배어 있으니 시원한 물에 만 밥만 있으면 한 끼 식사로 부러울 것이 없다. 딱딱한 굴비를 쌀뜨물에 불려서 시루에 찌거나 살짝 지져서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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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굴비를 먹는 이유는 입맛 돋우는 짭쪼름한 맛에도 있겠지만, 쇠한 기력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었다. 굴비의 재료인 조기의 효능에 대해서는 중국 문헌인 <임원십육지>에서부터 나타난다. 여기서는 ‘석수어’라고 부르며 설사나 소화불량을 치료하거나 해독에 좋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기(助氣)라는 이름도 기력을 북돋워준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굴비는 염장을 통해 조기의 성분이 빠져나가지 않은 채 보존성을 높인 음식이니 조기의 영양이 고스란히 들어있을 터, 굴비가 원기회복에 좋다는 이야기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환절기 건강에도 좋으니 겨울의 초입에서 굴비 한 접시쯤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 본 기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아톰스토리(http://atomstory.or.kr)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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