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출생의 비밀

2015년 11월 15일 18:00

‘우물 파다 노다지를 캐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다’. 어떤 행동이 생각지 못한 행운을 가져온 상황을 비유할 때 쓰이는 속담이다. 이 속담들은 새로운 약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곧잘 어울리는 비유가 된다. 역사적으로 특정 용도로 개발된 의약품이 우연히 다른 용도로 쓰이면서 대박을 터뜨린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인 약품은 발기부전 치료제로 유명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의 원료인 ‘실데나필’은 처음부터 발기부전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된 것이 아니다. 실데나필의 원래 임무는 새로운 방식으로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실데나필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보이는지, 그리고 부작용은 없는지 검사하는 과정에서 동물 실험에서는 일단 합격이었다. 이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첫 단계에서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약이 투여된다. 시험 결과 고혈압치료제로 부적격이었고 협심증 치료제로도 오래전에 개발된 니트로글리세린에 비해 훨씬 작용이 약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내약성 실험(최대 용량을 투여해 부작용을 관찰하는 실험) 결과 흥미로운 부작용이 발견됐다. 8시간마다 50mg을 10일간 복용한 사람에게서 다른 부작용과 함께 발기가 된다는 점이 보고된 것이다. 이미 막대한 연구비가 투자된 상황이기 때문에 연구 결과를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회사는 연구 성과를 ‘살리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이때 자일즈 브린들리의 깜짝쇼에 관한 자료가 진지하게 검토되기 시작했다.

 

브리들리는 영국 의사로, 1980년대 초 미국의 한 비뇨기학회 강연에서 페녹시벤자민을 직접 주사해 그 효과를 시연했다. 고혈압 치료제 페녹시벤자민은 1950년대 인체 호르몬 아드레날린의 구조를 살짝 바꾸어 만들어졌다. 페녹시벤자민은 몸속에서 마치 아드레날린처럼 행세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드레날린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페녹시벤자민과 마찬가지로 실데나필 역시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이에 화이자사는 연구 방향을 발기부전에 맞추기 시작했다. 1994년 5월 화이자사는 발기부전증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하루에 한차례 실데나필을 투여한 결과 10명에게서 효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소식은 비뇨기학회에 전해졌고, 의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이후 화이자사는 몇 차례에 걸친 철저한 임상시험을 거쳐 1998년 3월 27일 마침내 식품의약국으로부터 비아그라의 상표명을 달고 신약허가를 얻었다.

 

비아그라는 신약개발의 과정에서 상당히 운이 좋은 사례로 통한다. 이미 같은 성분을 가지고 ‘협심증 치료제’로서 동물실험과 임상 첫 단계 시험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험 속도가 빨랐다. 신약개발의 경제성 측면에서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고 평할 정도다.

 

한편 고혈압치료제의 일종인 미녹시딜도 탈모치료제로 더 인기를 끌었다. 대머리였던 한 고혈압환자가 고혈압치료제의 일종인 미녹시딜을 복용한 뒤 머리털이 돋아난 것이다. 이후부터 미녹시딜은 탈모방지, 발모촉진제로 널리 사용됐다. 해열·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아스피린은 본래 내복용 살균제로 개발된 것이었다. 암치료제로 이용되던 인터페론의 경우는 관절염에도 특효가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관절염 치료제로도 쓰이고 있다.

 

금연 치료제로 사용되는 부프로피온(상품명 웰부트린)은 원래 우울증 치료제로 개발됐다. 이 약은 니코틴 금단 증상을 완화시켜 흡연에 대한 욕구를 줄여준다. 식욕 충동도 조절해 금연으로 인한 체중 증가를 막는 효과도 있다.

 

이렇듯 과학기술은 종종 특정 분야에서 나온 결과물을 다시 활용해 새로운 성과물을 만들고 있다. 자칫 버려질 뻔했던 연구결과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유용하게 재활용한 사례들, 이런 사례를 교훈삼아 인류에 도움이 되는 신약이 많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강건일 과학평론가(전 숙명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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