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원전으로 돌아보는 원전지역 특산물 (3)

2015년 11월 20일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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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게맛을 알어?”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배우, 신구가 광고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청자들에게 질타하듯 읊조리던 대사다. 출처는 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게살버거’를 출시하며 런칭한 광고. 노인과 바다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내용이 당시 대히트를 치며 이 대사가 유행어로 회자되기도 했다. 아쉽게도 광고에 나온 제품은 새우버거와 맛이 비슷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비싸 곧 단종되었지만 광고와 대사만은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이 대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대게다. 원래 신구가 아닌 최불암이 1997년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끈 주말드라마에서 대게잡이 어선 선장으로 등장했을 때 자주 하던 대사였다. 당시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지역 특산물이었던 대게가 이 드라마를 통해 전국에 알려지면서 지금과 같은 고급 별미로 통하게 된 것이다.

 

겨울바다의 슈퍼스타, 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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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는 한국의 동해안과 일본은 물론, 멀리 알래스카까지 분포하는 게다. 흔히 크기 때문에 대(大)게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길게 뻗은 다리가 마치 대나무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알래스카에도 서식한다는 데서 알 수 있듯, 대게는 한겨울이 제철이다. 보통 11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가 어획기간이며 눈 오는 겨울에, 또는 눈이 오는 지역에서 잡힌다고 하여 영어로는 Snow Crab이라 부른다.

 

비교적 늦게 유명세를 얻긴 했지만 대게는 꽤 오래 전부터 한국인 식생활의 일부였다. 확인된 바로는 고려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려의 태조 왕건이 경상북도 영덕의 ‘차유마을’에서 대게를 먹었다는 문헌기록이 남아 있다. 차유마을은 당시 지명으로 현재의 축산면에 해당한다. 이 기록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게는 영덕과 울진이 가장 유명하다.

 

요즘이야 수입되는 대체품도 많다지만 실하게 살이 오른 대게는 그야말로 겨울 밥상의 슈퍼스타다. 별다른 조리법도 없이 그저 살아있는 것을 찜통에 던져넣고 푹 삶기만 해도 적당히 간이 배어 따로 양념이 필요 없다. 길다란 다리를 하나 떼어 안쪽을 젓가락으로 살살 밀어 탱탱하게 오른 살을 쏙 빼먹는 맛이 일품이다. 제대로 살이 오른 대게 다리살은 가위로 껍질을 찢어내는 것과 같은 거친 방법을 쓰지 않고도 부스러뜨리지 않은 채 꺼낼 수 있는데, 흡사 시판되는 게맛살처럼 예쁜 모양새를 갖추었으면서도 공산품 맛살 따위와 비교를 불허하는 감칠맛을 자랑한다.

 

다리살도 맛있지만 대게의 별미는 등껍질에 담긴 게장. 대게는 내장을 빼지 않은 채 조리하기 때문에 등껍질 안에 게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에 따뜻한 밥을 한 숟가락 넣고 김과 간장, 참기름을 버무려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제철 대게는 등껍질에도 살이 꽉 차게 붙어 있어 맛과 영양을 더해준다. 그야말로 대게의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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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대게가 크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 아니듯, 무조건 크다고 맛있는 대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덕에서는 껍질이 두텁고 몸집이 큰 대게를 속이 꽉 찬 박달나무에 비유하여 ‘박달대게’라고 불러 명품으로 치기도 하는데, 이런 대게는 마리당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박달대게가 살도 많고 맛도 좋지만 살이 실하게 들어찬 것으로 치자면 작은 놈이 더 낫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인맥을 통해 현지에서 소개받아 대게를 먹으면 작은 대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개체수 조절을 위해 게딱지 너비 9cm 미만의 대게는 놓아주는데 이보다 살짝 크면서 튼실해보이는 대게를 고르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서민들의 대게, 홍게
간장게장 부럽지 않은 밥도둑인 대게지만, 안타깝게도 생각날 때마다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런데도 겨울철 트럭 노점 등에서 헐값에 파는 대게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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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게처럼 보이는데 가격이 싸다 싶으면 대게가 아닌 홍게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홍게는 대게보다 붉은색이 훨씬 강하다. 유사한 점이 많다보니 오래 전부터 홍게는 대게의 대체품으로 사용되어왔다. 특히 육수를 내거나 국물요리를 할 때는 비교적 싼 홍게를 이용하는 것이 제격이다. 노점에서 파는 어묵 국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으며 홍게 반 쪽을 넣고 끓인 라면 맛도 일품. 싼 가격 때문에 가공제품의 재료로도 종종 활용되며 재료의 원형이 남지 않는 게살수프나 누룽지탕 등의 요리에도 애용된다.

 

홍게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전역에서 잡히지만 대표적인 특산지로 포항을 꼽는다. 대게보다 싼 맛에 먹는다고는 하지만 산지에서 제철에 맛보는 홍게는 대게 못지않을 정도다. 제철도 대게보다 약간 빨라 대게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쉬운 입맛을 달래주는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나름 아쉬운 점이라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제철 홍게는 대게 못지않은 가격을 자랑한다는 점 정도일까.

 

눈보라 몰아치는 게잡이 어선…기후변화 못 막으면 전망도 ‘악천후’
맛과 지갑을 맞바꾸는 수준의 비싼 가격에 대해 약간 변호하자면, 게잡이는 꽤나 힘든 일에 속한다. 겨울철 찬 바닷바람에 맞서면서 통발을 끌어올리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일하는 때가 한겨울이다보니 날씨와도 맞서 싸워야 하고 주무대가 수심 깊고 파고 높은 동해바다라 까딱 방심했다가는 얼음장같은 바다에 빠지고 만다. 0도에 가까운 바닷물에 빠지면 아무리 오래 버텨봐야 10~15분. 그나마도 당장 몸을 따뜻하게 하지 않으면 저체온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물 밖에서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조업이 한창인 1월에는 뱃전에서 흩어진 물보라가 순식간에 얼음조각으로 변해서 갑판에 쌓이고 건져올린 게들은 바로 얼어붙어서 부서지고 깨지기 일쑤라고 한다. 다리가 부러진 게는 상품가치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기껏 잡은 게가 이런 식으로 망가지면 그 날 조업은 허탕이나 다름없다.

 

고된 일이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어획량이 많아 수입이 괜찮아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개체수가 줄어 선원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미 상당수의 게잡이 어선들은 외국인을 인부로 고용하여 근근이 조업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선주들의 시름을 깊게 하는 것은 나날이 줄어드는 어획고. 한반도 주변의 수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찬 바다에 서식하는 대게와 홍게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비교적 북쪽인 동해 묵호항이나 속초항에서 조업하는 배들조차도 출항해봐야 적자일 때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러시아나 알래스카산 대게가 대거 수입되는 탓에 가격방어도 쉽지 않다. 개체수가 제법 많은 홍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대게와 홍게도 명태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서민 식탁의 터줏대감이던 명태도 불과 십여년 사이에 어획고가 급감했다. 문제는 지금의 감소세가 단순한 개체수 변동 사이클의 일부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는 점이다. 대게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밥상을 바꾸어 놓은, 또 하나의 사례인 셈이다. 안타까운 상상이지만, 한반도 연안의 수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언젠가는 ‘니들이 게맛을 알어?’라는 말이 진짜 국산 대게와 홍게를 먹어보기나 했냐는, 원래 맥락과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일지도 모르겠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실천 하나하나야말로 우리 밥상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본 기사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아톰스토리(http://atomstory.or.kr)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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