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TAR 그것이 알고 싶다 8] 숫자로 보는 핵융합, "-268도"

2015년 11월 30일 18:00

1911년 11월 18일 영국의 스코트가 드디어 남극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노르웨이 국기가 꽂혀 있었다. 나흘 전인 14일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이미 남극점에 도착한 것이다. 비록 ‘최초’라는 타이틀은 놓쳤지만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남극점에 도착한 스코트 역시 위대한 모험가로 기록되어 있다.

 

남극은 지구상에서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이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50~60℃. 남극대륙 고원지대에 있는 러시아 보스토크 기지 인근은 공식 관측 기준으로 영하 89.6℃를 기록했고, 일본 기지 ‘돔 후지’가 있는 해발 3779m 지점은 영하 94.7℃로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1월의 평균 기온이 0.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같이 어마어마한 영하의 온도를 체감하기 힘들게 만든다. 아이스크림 공장의 냉동창고 온도는 영하 35.9℃, 드라이아이스도 영하 78.5℃에 불과하다.

 

● 그렇다면 영하 268℃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하다는 ‘절대영도(-273℃)’에 가깝다. 절대영도는 어떤 물체에서 전자기 복사가 방출되지 않는, 다시 말해 분자 운동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이론적인 최저온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온도에 근접한 영하 268℃가 실제로 구현되는 곳이 있다. 핵융합에너지 기술 개발을 위한 핵융합연구장치 이야기다.

 

국내 연구진은 2007년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를 자체기술로 완공하였으며, 2008년 5월 최초플라즈마 발생을 위한 시운전에서 영하 268℃의 극저온 냉각운전에 성공했다. 1억℃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발생시켜야만 활발한 핵융합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극한의 낮은 온도는 왜 중요한 걸까.

 

핵융합에서의 극저온은 초고온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융합 반응은 태양보다 뜨거운 온도를 유지해 원자핵들이 반발력을 이기고 융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어떻게 가둘 수 있느냐는 것. 이 정도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물질이나 재료 역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자기장을 이용해 만드는 그릇 '토카막'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자석을 이용해 만든 핵융합 장치 ‘토카막(Tokamak)’을 발명했다. 플라즈마가 전기적 특성을 갖고 있는 점에 착안해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하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일반 전자석을 이용하여 자기장을 만들 경우 플라즈마를 가두기 위해 오랫동안 자석에 전류를 흘려주게 되면, 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고 가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초전도 자석이다. 어떤 종류의 금속이나 합금을 절대영도 가까이 냉각하면 전기저항이 갑자기 사라져 전류가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초전도 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1억℃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두기 위해서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자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초전도 자석을 이용한 핵융합장치인 KSTAR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그릇’으로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KSTAR는 30개의 초전도 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무게만 300t(톤)에 달한다. 이런 거대 규모의 초전도 자석을 영하 268℃까지 내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한 초전도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열 침입이 없도록 초고진공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초전도 토카막 극저온 냉각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것도, 극저온 냉각 시운전을 단번에 완료한 것도 한국이 처음이다. 이 같은 극저온 기술은 이제 핵융합 장치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된다.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LNG 선박, 인공위성 발사체, 적외선 감시 정찰, MRI, 극저온 수술 등으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문센과 스코트가 영하 50~60℃의 남극점 정복에 도전한 지 100년 만에 인류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의 세상을 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물질을 담기 위해 가장 차가운 그릇을 만든 한국의 핵융합 기술이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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