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상포진 ‘투병’기

2011.07.11 00:00
지난주 월요일. 전날 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닌데 가슴과 등이 뻐근하고 살짝 닿아도 아프다. 하루가 지나니 증상이 약간 더 심해졌다. 다음날엔 조금 더. ‘이상한데….’ 자세히 보니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이 약간 발그스름하다. 출근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픈 부위가 명치 높이의 오른쪽 가슴에서 시작해 오른쪽 등까지 띠처럼 분포해있다. ‘띠처럼…. 한자로는 대상(帶狀). 그렇다면 대상포진?’ 신경계에 잠복해 있던 바이러스가 깨어나 활동하면서 물집과 함께 엄청난 통증을 일으킨다는 대상포진. 오전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힌 기자는 아예 오후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다. ●최근 대상포진 환자 급증 “대상포진이네요.” 기자의 증상 설명을 듣고 환부를 한번 쓱 보더니 의사선생님이 가볍게 ‘선고’를 내린다. 긴장한 모습이 안 돼 보였는지 “노인들은 굉장히 아플 수 있지만 나이도 있고 또 일찍 왔으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런데 약을 먹어도 증상은 서서히 심해져 며칠째 왼쪽을 아래로 해 모로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똑 바로 누우면 등이 바닥에 닿아 아프다). 그래도 입원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얘기에 비하면 이정도인게 다행이란 생각이다. 만일 병원에 더 늦게 갔더라면…. 최근 전남대병원 피부과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상포진으로 내원한 환자 수는 2003년 411명에서 2010년 750명으로 7년 사이에 82%나 늘었고 특히 젊은 층 환자가 급증해 2010년에는 10~40대 환자가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영양실조 수준의 다이어트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의학용어 큰 사전’에서 ‘대상포진’을 찾아봤다. 영어로는 herpes zoster 또는 shingles. 대상포진은 헤르페스바이러스의 한 종류인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약자로 VZV)가 일으킨다. 과로했을 때 입술 주변에 생기는 물집을 유발하는 단순포진 바이러스(herpes simplex virus, 약자로 HSV)의 친척이다. 헤르페스바이러스는 바이러스 가운데서는 가장 덩치가 큰 종류로 게놈 크기가 10만~23만 염기쌍이고 유전자도 160여 개나 된다. 반면 인플루엔자바이러스 게놈은 1만 염기쌍이 조금 넘고 유전자도 10여개에 불과하다. 헤르페스바이러스는 숙주에 감염된 뒤 잠복해 있다가 숙주의 면역계가 약해지면 활동을 재개한다. 헤르페스(herpes)란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herpin’은 ‘잠복’이라는 뜻이다. 헤르페스바이러스의 유전자 가운데 다수가 잠복과 재활성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VZV의 경우 어릴 때 감염되면 수두 증상이 나타나는데 병이 나은 뒤에도 바이러스가 배근신경절이라고 부르는 등에 있는 신경조직에 잠복해 있다가 숙주(사람)의 면역계가 약해졌을 때 활동을 재개하면서 신경을 타고 퍼져나가 대상포진 증상을 일으킨다. 이때 신경말단에 손상을 줘 엄청난 통증을 일으키는 것.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수두에 걸린 적이 있다. 당시 의사선생님이 “이건 애들이 걸리는 건데…”라고 말해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바이러스가 거의 30년이 지나서 깨어난 셈이다. ●항바이러스제 개발로 노벨상 수상 저녁에 약을 먹으면서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약이 작용하는지 궁금해져서 처방전 약물을 하나하나 검색해봤다. 먼저 하루에 한 알 먹는 팜시클로버(약품명으로 처방전의 상품명은 약간 다르다)는 항바이러스제다. 처방전의 핵심인 셈이다. 1990년대 개발된 팜시클로버는 DNA 염기 가운데 하나인 구아닌과 분자구조가 비슷하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자신의 게놈을 복제할 때 활동하는 DNA중합효소가 팜시클로버를 구아닌으로 착각해 서로 결합하면서 작동을 멈춘다. 그 결과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을 수 있다. 다행히 사람의 DNA중합효소는 팜시클로버를 구아닌으로 착각하지 않기 때문에 큰 부작용은 없다. 그럼에도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을 뿐 기존의 바이러스를 죽이는 건 아니다. 따라서 항바이러스제는 우리 몸의 면역계가 전열을 정비해 바이러스에 반격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구아닌과 구조가 비슷한 항바이러스제의 원조는 1970년대 말에 개발된 아시클로버로 이 약물의 개발에 큰 역할을 한 미국의 생화학자 거트루드 엘리언은 198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아시클로버는 지금도 단순포진에 바르는 항바이러스연고의 주성분으로 쓰이고 있다. 사실 항바이러스제가 나오기 전까지 백신으로 병 자체가 안 걸리게 하는 것 외에는 인류는 바이러스 질환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 지난번 신종플루 대유행 때 피해가 그 정도로 그친 것도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 덕분이었다. 참고로 타미플루는 바이러스 표면 단백질(효소)의 저해제로 작용해 증식을 막는다. 처방전의 다음 약은 진통제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는 메페남산(역시 약품명으로 상품명은 다르다)이라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가 처방됐다. 3일 뒤 두 번째 갔을 때 통증이 좀 더 심해졌다고 하자 의사선생님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처방을 바꿨다. 찾아보니 진통 효과가 좀 더 큰 모르핀계 진통제인 트라마돌염산염이 주성분인 약물이다. 트라마돌염산염은 마약인 코데인(아편의 성분)과 구조가 비슷한 분자로 1970년대 후반 개발됐다. 약으로 쓰는 것이지만 어쨌든 아편류를 처방받은 셈이다. 이 약 덕분인지 병이 낫고 있어서인지 지금은 통증이 덜하다. 그리고 다음 약물은 제산제로 위의 두 약물이 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위벽을 보호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끝으로 물집이 올라온 부위에 바르는 액체로 상처부위의 2차 감염을 막기 위함으로 보인다. ●현대 화학의 힘 문득 지난 달 프랑스에 취재갔을 때 만난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의 회장인 프랑스 자유대 니콜 모로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모로 교수는 사람들이 화학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뿐 그 고마움은 간과한다며 그 일례로 사람들이 병이 나으면 의사에게 감사하지만 그 약품을 만든 화학자의 노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대상포진 처방전에 쓰인 약물의 면면을 살펴보니 모로 교수의 말이 새삼 실감난다. 화학자들이 이런 약물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의사가 아무리 정확히 진단을 내려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을 것이고 환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병이 나을 때까지 굉장히 고생을 해야 했을 것이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화학의 해’다. 인류가 질병에서 겪는 고통을 줄여주는데 많은 역할을 한, 화학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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