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풀리니 ‘기억’도 풀리나… 봄에 심해지는 건·망·증

2008.03.17 09:10
“어디 뒀더라?” 30대 후반의 주부 이미정 씨는 요즘 물건 둔 곳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봄이 되자 나른한 탓에 정신이 멍하고 흐릿해지는 기분도 든다. 이 씨는 건망증이 치매로 발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지난주 ‘세계뇌주간’을 맞아 전국의 여러 병원에서 건망증, 기억력 감퇴, 치매, 뇌의 메커니즘 등에 대한 건강 강좌가 진행됐다. 일부 강의는 참석자가 너무 많아 급히 좌석을 늘려야 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참석자들이 궁금해했던 건망증 극복 비법을 소개한다. 키워드 메모-이미지 기억…뇌도 훈련해야 튼튼해져요 기억력의 메커니즘 사람의 뇌세포는 100억∼140억 개다. 사람마다 뇌세포 수가 다르기 때문에 ‘머리는 타고 난다’는 말은 의학적으로 틀리지 않다. 그러나 선천적인 영향은 30%에 불과하다. 후천적 영향이 70%를 차지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방치하면 나빠진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는 변연계(가장자리계)의 ‘해마’다. 해마에서 ‘시냅스’라는 뇌신경세포다발을 많이 만들고 신경전달물질이 더 왕성하게 분비되면 기억력이 좋아진다. 반면 나이가 들거나 머리에 외상을 입었을 때, 뇌중풍 등 질병에 걸렸을 때 시냅스는 줄어든다. 뇌세포의 활동이 떨어질 때도 시냅스가 감소한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 멍청해진다’는 말도 의학적으로는 맞는 셈이다.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애쓰지 않으면 기억력은 쉽게 감퇴한다. 창고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둔 물건은 쉽게 찾기 힘든 것처럼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는 정보는 뇌의 저장 공간만 차지할 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건망증 심하다고 치매로 발전되진 않아 심각한 건망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러다가 치매에 걸리는 것 아닌가” 하며 걱정한다. 그러나 건망증은 의학적으로 치매와 상관이 없다. 건망증이 심하다고 치매로 발전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건망증은 단기기억장애다. 뇌 기억회로의 작동 과정에서 일시적인 혼선이 빚어지는 것을 말한다. 반면 치매는 기억회로 전체가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다. 건망증일 때는 평소 잘 쓰던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지만 치매일 때는 문맥에 맞지 않는 엉뚱한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스트레스와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 피로 등이 건망증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봄철 나른해지면서 멍하고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은 겨울 동안 쌓인 신체 피로와 호르몬 분비의 변화 때문이다. 물론 건망증도 심하면 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약물 중독, 전신 감염, 우울증 등이 1차 원인이 돼 생기는 건망증은 반드시 의사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주변 정리도 기억력 높이는 데 도움 뇌의 노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늦출 수는 있다. 뇌에 좋다는 약을 찾아 먹는 것보다 뇌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훈련이 더 효과적이다. 메모는 아주 좋은 훈련법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메모하면 오히려 기억을 감퇴시킨다. 뇌가 메모에 의존하고 기억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 단어만 메모하고, 그것을 보면서 메모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면 뇌의 노화를 늦출 수 있다. 글자나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기억하는 ‘시각화’ 훈련도 좋다. 누가 A를 말하면 A와 연관된 이미지로 머릿속에 저장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좌뇌와 우뇌를 모두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사소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는 것은 좋지 않다. 뇌의 저장 공간이 불필요한 정보로 채워져 꼭 기억해야 할 정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잊을 것은 잊는 태도가 좋다. 주변 환경을 늘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도 기억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물건을 항상 같은 자리에 두고, 정리정돈을 잘하면 뇌는 ‘수첩은 두 번째 서랍에 있지’처럼 자동적으로 기억하게 된다. 뇌세포는 혈액 속의 산소와 영양분을 먹고 산다. 많은 혈액이 뇌로 갈 수 있도록 걷기와 체조운동을 한다. (도움말=오병훈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원장,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 “뇌 전기자극법 기억력 향상에도 도움” 美 알리 레자이 교수 방한 “뇌에 전기로 자극하는 치료법이 이제 뇌 손상이나 파킨슨병 등 심각한 질환뿐 아니라 기억력 향상이나 비만을 치료하는 ‘웰라이프’적인 임상연구까지 확대됐습니다.” 최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연세대 의대 신경조절치료 국제 심포지엄’에 초대된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신경회복센터 알리 레자이(사진) 교수. 지난해 그는 6년간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일 정도인 ‘반(半)식물인간’ 상태였던 남성(38)의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한 뒤 깨어나게 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신경외과 전문의다. 이 남성은 현재 스스로 식사도 하고 간단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이 치료법은 ‘뇌심부전기자극술’이라고 부르며 그의 연구결과는 영국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발표됐다. 시술 방식은 가슴 부위에 설치한 배터리를 통해 뇌에 심은 전극으로 미세한 전류를 흘려보내 뇌를 자극하게 된다. 뇌에 전극을 심는 곳은 대개 통증이나 감정, 의식 등을 조절하는 시상부다. 뇌심부전기자극술은 1970년 초 일본에서도 시도가 있었지만 3차원 영상기기를 활용한 과학적인 접근법 개발 등으로 레자이 교수의 연구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 치료법은 심각한 뇌 손상에 의한 뇌 기능 장애로 침상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묻는 말에 간신히 대답할 때도 있는, 최소한의 의식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레자이 교수는 “뇌신경 자극술이 장차 파킨슨병, 뇌 손상, 편두통, 간질 등의 신경과 영역뿐 아니라 우울증 강박증 등 정신과 영역과 심한 통증 치료 시 약물을 써도 효과가 없는 환자들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장진우 신경외과 교수가 2000년부터 220건 이상의 다양한 신경계 질환 환자를 치료해왔다. 레자이 교수는 “이 치료법의 부작용은 환자의 1, 2%에서 생기는 뇌출혈”이라며 “하지만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는 3차원 영상기술로 뇌출혈의 부작용도 머지않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 교수, 김덕용 재활의학과 교수와 함께 수년 내에 반식물인간을 대상으로 한 뇌심부전기자극술의 국제 공동연구에 국내 의료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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