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자폐증 치료법 찾으려면...'뇌 기증'부터 활발해져야"

2021.03.05 07:00
김세훈 한국뇌은행장 인터뷰
이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만난 김세훈 한국뇌은행장(연세대 병리학교실 교수).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이달 1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의대에서 만난 김세훈 한국뇌은행장(연세대 병리학교실 교수).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뇌 기증'이란 말은 국내에선 아직 낯선 개념이다. 사후 심장이나 신장, 안구를 떼어내 새 생명에게 전하거나 의학 연구에 기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뇌 기증을 했다는 사례를 봤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후 기증 방식이라고 해도 머리에서 뇌를 꺼낸다는 상상만으로도 일반인에겐 두려움을 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신촌 연세대 의대에서 만난 김세훈 연세대 병리학교실 교수는 "뇌 기증이야 말로 인류의 난제인 파킨스병과 치매, 자폐증과 우울증 같은 뇌질환을 정복하는 가장 첫 단계"라며 "이 막연한 두려움만 극복하면 누구나 전 세계 인류와 미래 세대에 값진 유산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에게 뇌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연구 재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병의 원인이 어떻게 되고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밝히는 병리학자다. 1994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신경병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여러 질병 중에서도 특히 뇌 신경 질환 쪽에 집중해왔다. 이런 연구 경력을 인정받아 올해 1월 제4대 한국뇌은행장에 선임됐다. 

 

한국뇌은행은 인간 뇌자원을 확보, 관리해 이를 필요로 하는 연구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2014년 한국뇌연구원 내에 설립된 기구다.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기증된 사례는 151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뇌 기증을 3건 밖에 받지 못했다. 뇌 기증의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막연한 두려움이 커서 기증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전임 뇌은행장들처럼 김 교수 역시 뇌 기증에 대한 편견과 싸움은 큰 숙제로 남아 있다. 

 
김 교수는 "사회 지도층,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역할이 크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뇌 기증 릴레이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뇌 연구 초창기 미국과 유럽 등 현재의 뇌연구 선진국에서도 뇌 기증은 정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뇌 연구의 취지에 공감한 유명인들이 기증에 나서면서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2009년 공영방송 BBC의 유명TV쇼 진행자 제레미 팩스맨과 여배우 제인 애셔가 방송에 나와 파킨슨병 연구를 위해 뇌 기증을 약속하면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서도 대표팀 출신의 여자 축구선수와 프로미식축구 선수들이 꾸준히 뇌 기증을 약속하며 실제 사망 후 기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유명인의 뇌 기증은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 유럽의 인간 뇌 프로젝트 등 국가적 뇌 연구 정책과 맞물리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뇌 연구가 선도적 역할을 하는데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 하단에 있는 노란 통에 뇌 조직이 들어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왼쪽 하단에 있는 노란 통에 뇌 조직이 들어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김 교수는 뇌 기증의 확산과 함께 뇌은행의 역할을 좀더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부검과 분석 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본 니가타대는 한 해 150례의 뇌 부검을 진행할 정도로 굉장한 뇌 관련 데이터를 가진 곳 중 하나”라며 “니가타대가 그런 데이터를 가지게 된 것은 관련 시스템이 매우 잘 정비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니가타대에는 3개의 뇌 부검팀이 있다. 뇌 기증을 약속한 사람의 사망 연락을 받으면 현장에 나가서 뇌 부검을 채취할 수 있는 도구들까지 완비돼 있다. 1개 팀이 뇌 기증 채취를 위해 니가타대 연구소를 떠나도, 연구소에 남아 뇌 조직에 대한 병리검사를 진행하고 연구에 쓸 수 있게끔 정리하는 인원도 존재한다. 

 

김 교수는  “여태까지 의학의 발전은 부검을 통해 이뤄져 왔다”며 “최근 전자 현미경을 통해 세포를 관찰하거나 DNA를 분석해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방법들이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 장기를 들여다보는 부검이 없다면 ‘절름발이’ 격인 분석이 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뇌 기증 문화가 확산돼, 기증이 많아지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완벽한 대처가 힘들다는 게 김 교수의생각이다.

 

김 교수는 “뇌 기증과 그 이후의 과정을 시스템화 하는 것이 목표”라며 “뇌 기증 문화를 확산시키고, 기증된 뇌를 공공화해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기반을 닦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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