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 한국 과학자 사회의 자화상

2021.03.25 18:38
 

“실제 과학자 사회에 대한 여러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자들을 훈련시키는 것으로부터 연구결과의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지식생산은 적은 수의 학자들과 기관들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대학(invisible college)’의 존재는 교육과정과 새로운 학자의 고용 그리고 핵심적이거나 우수한 저널에 대 한 통제나 영향력이 소수의 기관들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수의 엘리트 기관이 모든 학자들 중의 상당수를 훈련시키고 있으며, 소수의 중요한 저널들이 아이디어와 지식의 확산을 위한 주요 채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주된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특정 아이디어가 반복되고 강조되는 것을 보장한다. 게다가 소수의 특정 기관 출신학자들이 과학 저널들의 편집진을 독점하고 있는 현상은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가 생산성 자체의 차이만으로 구조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비과학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김명심 ‘한국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중에서

 

머튼의 보편주의적 규범과 현대사회의 과학자 사회

 

철학자 헤겔은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철학과 사상은 분명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 놓여 있다. 하지만 헤겔의 정의가 자연과학에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결론은 아직 없다. 1990년대 과학 사회학자들과 과학철학자, 과학자 일군은 과학 역시 개인의 주관에 따른 상대주의적 지식인가라는 명제를 두고 치열하게 ‘과학전쟁’을 벌였지만,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 자연과학의 내용적 측면, 즉 과학적 이론이 정당화되는 맥락은 분명 시대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과학을 둘러싼 환경들, 예를 들어 학회, 학술지, 대학, 정부, 연구비 등의 환경, 즉 과학적 이론이 발견되는 맥락은 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보인다. 과학이 시대와 접점을 맺는 그 맥락을 과학 생태계라고 부를 수 있다. 

 

과학 생태계는 과학자사회가 놓인 시간과 장소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성격으로 진화한다. 17세기 유럽의 서쪽에서 근대과학이 발전하던 시기의 과학 생태계와 19세기 유럽에서 발전하던 근대국가 시기 산업혁명과 함께 호흡하던 과학 생태계는 다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생태계의 모습은, 대부분 20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 형성된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연구비생태계, 그 연구비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과학자사회, 경쟁을 위해 과학자의 경력을 계량화하는 대학과 정부, 과학자의 논문이 경력을 증명하는 일종의 화폐가 되어가는 모습, 그리고 이에 발맞춰 등장한 영향력지수로 서열화된 학술지들, 마지막으로 미친듯이 출판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과학자 사회의 추락까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 생태계의 모습은 지극히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닮아 있다.

 

김명심 박사는 2008년 '한국 대학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라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김 박사는 서구에서 시작된 과학자사회의 계층화와 불평등이 한국에도 존재하는지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를 위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3개 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350명의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구사회학적 특성과 교육과정, 생산성, 현재의 지위를 분석했다. 김 박사는 우리의 “현실 세계가 이미 많은 사회적 조건들에 의해 불평등하게 구조화되어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즉,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위치하고 있다는 가정은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깊이 고려하지 않는 결과”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는 현대의 과학자 사회가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주장한 CUDOS라는 ‘보편주의’적 규범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머튼이 이상화했던 과학자 사회의 규범들은 이미 미국이라는 시공간적 맥락을 거치며 훼손되었으며, 현대사회의 과학자 사회는 ‘특수주의’라는 규범을 따른다는 것이다.

 

로웰 하겐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워렌 핵스트롬 매디슨 위스콘신대 교수는 과학자의 박사학위 대학이 과학자의 경력 중 생산성에 큰 차이를 만드는 과정을 분석했다. 미국의 자연 과학자 576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이 연구에서, 상위권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과학자와 하위권 대학에서 교육받은 과학자들에게서 계층화와 양극화 현상이 발견되었고, 이 분석은 과학자사회에서 능력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즉, 과학자 사회 또한 출발선이 동일하지 않은 이들을 동일한 평가체계로 검증하는 능력주의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논문은 1967년에 출판되었지만, 과학자사회는 이들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채 21세기를 맞이했다⁠. 

 

하겐스와 핵스트롬의 1967년 논문은 이미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과학자사회의 계층화와 불평등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하겐스와 핵스트롬의 1967년 논문은 이미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과학자사회의 계층화와 불평등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과학계의 엘리트 주의, 그리고 비과학적인 메커니즘

 

과학 생태계에 발을 내민 과학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계가 치밀한 엘리트주의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과학자를 훈련시키는 과정부터, 지식의 생산과 경력의 인정 및 보상에 이르기까지, 과학계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벨상과 하버드 대학이라는 상징을 정점으로 피라미드처럼 구조화된 이 생태계 속에서, 과학자는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야만 한다. 이 치밀한 엘리트의 카르텔을 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데, 과학자의 경력이 인정받는 모든 통로, 예를 들어 소수의 중요한 저널을 비롯해서 학회의 주요 이사회와 연구비심사재단의 주요보직까지 모두 이들 소수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의 엘리트주의는 사회의 다른 어느 분야보다 구조적이며, 과학자사회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화된 엘리트주의가 과연 과학 생태계의 발전에 있어 긍정적이냐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를 정점으로 계층화된 생태계가 과학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란, 17세기 이후 과학생태계가 그렇게 유지되어 왔다는 경험칙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린 이미 현대 과학자사회가 겪고 있는 과학출판의 구조적 모순을 통해, 400년이 넘은 학술출판 시스템과 대학이라는 낡은 시스템에 그 어떤 정당성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5. 즉, 과학생태계의 엘리트주의가 오래된 시스템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이 시스템을 정당화할 수 없다. 게다가 과학생태계를 운영하는 과학자사회는 자연과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학적 방법론을 신봉하며, 자연의 비밀을 실험과 이론으로 파헤치는데 익숙한 직업군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과학적인 방법론을 신봉하는 과학자사회는, 단 한번도 과학적으로 과학생태계의 구조적 모순을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즉, 현재 과학생태계가 겪고 있는 심각한 엘리트주의와 그로 인한 불평등은, 다른 대안을 통해 실험되지 않은, 비과학적 유산이라는 뜻이다. 과학자사회는 비과학적인 메커니즘으로 과학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는 모순에 처해 있다.

 

과학자의 박사학위 대학 뿐 아니라, 그의 성별, 지도교수의 명성, 나이, 인종, 출신국가 등의 귀속적 특성들은 아주 분명하고 뚜렷하게 과학자의 경력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 사회 스스로 네트워킹을 강조하는 현재의 모습이야말로, 과학생태계가 과학자 개인의 능력을 과학적 업적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만으로는 평가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능력주의의 문제가 공정한 평가의 현실적 불가능이라는 난제로 수렴되듯,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또한 과학자의 경력을 평가하는 문제를 맞닥뜨릴 수 밖에 없다. 익명의 심사자와 권위적인 편집자로 구성된 현재의 논문 심사제도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었지만, 과학계의 논문심사제도가 어느 정도의 수준을 지닌 과학논문을 평가할 수 있다는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과학논문심사평가의 공정성이, 과학생태계가 겪고 있는 무한경쟁으로 인해 왜곡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과학자사회의 경쟁이 심화될 수록, 엘리트주의를 당연하 기조로 삼고 있는 과학자사회의 기제는, ‘보이지 않는 대학’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학연과 소수의 엘리트들만을 선택하려는 욕망에 제압당할 수 밖에 없다. 과학생태계에서 드러나는 성차에 대한 연구들은, 과학자사회가 언제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국 대학 과학자 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한국의 대학은 인구절벽과 수도권 중심 편중이라는 현상을 통해 이미 엄청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 이전에 이미 한국 대학들은 미국 대학들이 시작한 연구중심대학의 활성화와 학문의 상업화를 통해 정부와 함께 국제 경쟁력이라는 목표를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대학 간의 경쟁은 심화되었고, 산학연이라는 개념도 교수들 사이에서는 일상어가 되었다. 돈이 되지 않는 학문과 학과는 모두 제거되거나 통폐합되었고, 그 사이에 한국 대학에서 기초학문은 이미 말살되고 있었다. 한국의 대학은 이미 경제적 이익의 추구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나가는 거대한 자본주의적 회사로 변모해 있고, 한국 대학의 과학자 사회 또한 그 맥락 속에서 성장할 수 밖에 없다. 

 

김명심 박사는 논문에서 이런 대학의 상업화가 진행중인 맥락 속에서, 한국 과학자 사회가 머튼이 말한 보편주의적 규범에 대해 어떤 관점을 보여주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설문조사의 두 번째 질문은 “국내에서는 연구주제를 선정할 때 순수 과학적 가치보다 경제적 응용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였고, 무려 87.1%의 과학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즉, 한국사회에서 연구 중인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연구의 경제적 응용가능성을 당연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 군사독재시기를 거치며 과학기술의 양적 성장을 이루었고, 바로 그 시기 과학은 경제발전의 도구로 각인되었으며, 따라서 과학연구가 경제적 응용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좀 더 친숙하다⁠. 따라서 세번째 질문, ”개인적인 관심보다 국가발전에 필요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더 인정받고 있다”에 대한 답변에 대해 81.5%의 과학자가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한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네 번째 질문에서 나온다. ”연구비가 풍부한 분야로 연구주제를 바꾸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다”라는 질문에 대해 72.9%의 과학자가 ‘그렇지 않다’ 혹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변했다는 사실은, 연구주제를 바꾸는 주요 동인이 연구비라는 암묵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동시에,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따라 논문을 출판하기 급급한 윤리적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애써 숨기던 진실들 속에서 우리는 한국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 가운데 상당수가 “이해관계를 초월한 과학적 진리의 추구라는 전통적인 과학자상”과는 상반되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이나마 알 수 있다. 한국의 과학자 사회 역시 과학의 상업화라는 세계적인 현상 속에서 상업화된 모습을 보이는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김명심. "한국 대학 과학자사회의 계층화 요인 연구" 국내박사학위논문 경희대학교, 2008. 서울
-머튼의 CUODS와 그 훼손에 대해서는 다음글을 참고할 것, 사이언스타임즈, 김우재, [과학지식인 열전] 현대 사회의 과학자, 그리고 석기시대인, https://www.sciencetimes.co.kr/news/현대-사회의-과학자-그리고-석기시대인
-Hargens, L. L., & Hagstrom, W. O. (1967). Sponsored and contest mobility of American academic scientists. Sociology of education, 24-38.
- 하겐스와 핵스트롬의 1967년 논문은 이미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과학자사회의 계층화와 불평등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 논문도 변해야 한다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3647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미래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6500
-실제로 대부분의 오프라인 학회는 네트워킹이라는 목적을 위해 조직된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마틸다의 유리천장을 참고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0837
- http://www.viva100.com/main/view.php?lcode=&series=&key=20210324010006869
- [김우재 칼럼] 노벨상과 경제발전, 그리고 박정희의 유산 https://sisun.tistory.com/422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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