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관심하되 항상 보라" 식물을 잘 키우는 비결

2021.04.03 08:00
가드너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운영기획실장
 

꽃과 정원이 좋아 식물의 모든 것을 공부한 가드너, 식물이 걸린 병을 진단하는 식물 연구자. 본래 음악가이지만 식물에 빠져 홈 가드너가 된 식물 에세이 작가, 식물 소설을 쓰다가 식물을 사랑하게 된 SF 작가까지 식물에 뿌리내린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식물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들어봤다.

 

“제주 서귀포 여미지식물원에서 처음 일했을 때 가드너가 되려면 ‘백공(百工·온갖 종류의 장인)’이 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죠. 처음에는 이해 못했는데 가드너는 식물에 관한 일이라면 정말 뭐든 잘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3월 4일 충남 세종 국립세종수목원에서 만난 가드너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은 백공의 경지에 이른 국내 대표적 가드너다. 그는 “가드너는 식물 수집부터 증식, 육종, 번식, 관리, 전시 등 식물의 모든 것을 섭렵해 이들을 통해 식물에 새 삶을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이 백공 가드너로서의 이력을 처음 시작한 것은 대학이었다. 원예학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원예학의 주류였던 채소 등 실용작물보다 꽃과 정원문화에 더 강하게 매료됐다. 강원도 대관령의 고랭지 채소 농가와 포도주 농장으로 실습을 다니면서도, 관심은 온통 꽃에 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그가 선택한 직업은 뜻밖에 굴지의 과학책 전문 출판사였다. ‘사이언스북스’에 입사해 식물과 생태 분야를 맡아 책을 기획하는 한편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했다.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남윤중 제공

“충남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출신 가드너 칼 페리스 밀러(한국 이름은 민병갈)가 회원제로 운영하던 곳이었어요. 회원가입을 하고 주말마다 식물원에 찾아가 한쪽에 쭈그려 앉아 앙증맞은 야생화 사진을 찍곤 했죠.”


책 속의 식물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제주 여미지식물원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가드너에 입문한 그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비탈면에 쌓을 조약돌 옮기기였다. 현실로 마주한 가드너는 꿈꾸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무실에 앉아 글만 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돌 나르고 삽 푸는 일을 하게 된 거죠.”


이후 식물원에 있는 수백 종의 식물을 공부하고 정원 가꾸기에 필요한 각종 연장을 능숙하게 다루는 법을 배웠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눈사람 만들기, 리스 등의 연출 재료 구하기, 포토존 제작하기 등도 모두 가드너의 일이었다. 


힘들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인 꽃을 번식하는 순간에는 힘듦도 잊을 수 있었다. 식물은 저마다 자라는 모습이 제각각 다른데, 이렇게 매번 다른 모습의 식물을 다루는 것이 좋았다. 특히 빅토리아 수련을 콩알 크기의 씨앗으로 번식시켜 잎 하나를 2m가량까지 키우고, 딱정벌레 대신 직접 수분을 시킨 경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빅토리아 수련은 밤 9시쯤에 파인애플 향기를 내며 활짝 펴요. 아마존에서는 딱정벌레가 꽃 안으로 들어가 수분을 시켜요. 딱정벌레가 들어가면 꽃잎을 닫아 24시간 가둬버리는 것이죠. 그럼 하얀 꽃이 다음 날 분홍색으로 변하며 잎을 열고, 이때 노란 수술이 발생해요. 온몸에 꽃가루를 묻힌 딱정벌레는 다른 암꽃으로 날아가 꽃가루를 옮겨요. 이로써 연꽃이 자가수정을 피하게 하죠. 아마존이 아닌 제주에서는 가드너가 직접 이 작업을 해 주는데, 깜깜한 연못에 들어가 4살된 딸이 비춰주는 랜턴 빛에 의지하며 딱정벌레처럼 꽃가루를 옮겨주던 그 한밤의 정적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박 실장은 운영과 연구, 정원 연출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자 30대 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 세계적인 미국 롱우드가든의 국제 가드너 양성과정에 도전했다. “1년 동안 세계 최고 식물원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익혀 철저하게 벤치마킹하겠다는 목표였죠.”


이후 미국 델라웨어대 롱우드대학원에서 대중원예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에서 정원 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지난해 10월 개장한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전시기획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식물의 신’처럼 보이는 가드너지만, 의외로 그는 수없이 많은 식물을 죽였다. 그는 식물의 죽음과 동물의 죽음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식물을 키울 때 죽일까 봐 고민하는 사람이 많은데, 식물은 번식, 증식을 통한 ‘순환’이 기본 원리예요. 생을 다한 잎을 제거해 줘야만 새순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되 항상 봐야 한다”며 “흙을 만져보고 메말라 있을 때마다 물을 주고, 잎사귀를 한 번씩 들쳐 보고 진딧물이나 벌레가 없는지 확인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식물을 키울 때 식물의 고향을 검색해 본 뒤, 그와 비슷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주면 집에서도 온실 속 식물만큼 잘 기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식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져서 기쁘다는 그는 예쁜 정원을 가꾸는 것을 넘어 국내 자생식물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알리고 식물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널리 확산시키는 게 꿈이다. 


“선조들이 가꿨던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그 철학과 미학을 제대로 살린 정원을 만들어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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