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장이 제2의 폐가 될 수 있을까

2021.05.25 14:00
폐렴 등 여러 이유로 폐활량이 크게 떨어져 자발적 호흡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환자들이 인공호흡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으로 환자가 급증하면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인공호흡기 사용으로 회복 뒤 폐 기능 저하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제공
폐렴 등 여러 이유로 폐활량이 크게 떨어져 자발적 호흡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환자들이 인공호흡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으로 환자가 급증하면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인공호흡기 사용으로 회복 뒤 폐 기능 저하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제공

지난 3월 어느 날 TV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다. 인도 갠지스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목욕을 하는 장면이었다. 힌두교 연례행사라는데 코로나가 좀 수그러들었다고 저래도 되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4월부터 인도의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더니 5월 들어서는 하루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미국이 갖고 있던 기록을 깨면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자중지란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

 

더 안타까운 건 이 와중에 산소통을 구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증상이 심해져 폐렴으로 진행하더라도 산소통에 연결된 비강 캐뉼러나 안면 마스크로 산소 분압이 높은 공기를 호흡하며 치료를 받으면 대다수는 회복될 수 있다. 이런 기본 장비가 없어 죽는다는 건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도 한이 맺힐 일이다.

 

그런데 증상이 악화돼 폐의 기능이 더 떨어지면 공기 중 산소 분압을 높여도 환자의 자발 호흡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때 기계환기 시스템을 가동해 산소를 넣어주는 장비가 인공호흡기다. 코로나 환자가 급증할 경우 지난해 유럽 1차 팬데믹처럼 선진국에서도 인공호흡기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중환자를 나이에 따라 선별해 치료하면서 고령자는 인공호흡기를 달지 못한 채 죽어가는 장면은 충격을 줬다.

 

꼭 코로나가 아니라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료 과정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공호흡기를 쓰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공기의 주입량과 주기를 정교하게 조정한다지만 폐포에 무리를 줘 폐의 기능이 떨어진다. 회복된 뒤에도 숨 쉬는 게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가능한 안면 마스크에서 인공호흡기로 넘어가지 않아도 숨을 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환자에게 희소식이 될 것이다. 또 인공호흡기가 마련돼 있지 않은 병원에서 응급환자가 생겨도 대처할 수 있거나 최소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 미꾸리의 장호흡에서 영감 얻어
최근 일본과 미국 공동연구자들은 미꾸리의 장호흡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흉내낸 실험을 한 결과 포유류에서도 장호흡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사람에서도 가능하다면 인공호흡기를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이 될 수도 있다. ′메드′ 제공
최근 일본과 미국 공동연구자들은 미꾸리의 장호흡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흉내낸 실험을 한 결과 포유류에서도 장호흡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사람에서도 가능하다면 인공호흡기를 대신할 수 있는 치료법이 될 수도 있다. '메드' 제공

학술지 ‘메드(Med)’ 5월 14일자 온라인판에는 적어도 동물실험에서 이런 방법을 찾았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일본 도쿄의대 다케베 다케노리 교수팀은 생쥐와 돼지의 직장에 산소가 많이 들어있는 용액을 주입할 경우 저산소 상태에서도 혈중 산소 농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일정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용액 내 산소가 장벽에 분포한 모세혈관으로 이동하고 모세혈관의 이산화탄소가 용액으로 빠져나가는 기체교환 과정인 ‘장호흡’이 일어난 결과다.

줄기세포 연구자인 다케베 교수는 3년 전 아버지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위독해지자 인공호흡기를 달았고 다행히 회복이 됐지만 그 뒤 폐 기능이 떨어져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안이 없을까 고민하며 문헌을 찾아봤다. 이 과정에서 몇몇 수중 동물들이 아가미호흡이나 피부호흡 말고도 장호흡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산소 상태에서 보조 수단으로 장호흡을 해 살아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미꾸리로, 얕은 물에 살다 보니 가뭄 등으로 물이 말라 산소가 부족한 때가 많아 생존 수단으로 장호흡을 진화시켰다. 미꾸리의 장은 앞부분과 가운데 부분이 소화와 수분흡수라는 평범한 기능을 수행하고 뒷부분은 장호흡이라는 특화된 기능을 맡고 있다. 입으로 삼켜진 공기는 소화관을 통해 장의 말단에 이른다. 이곳의 장벽은 얇고 모세혈관이 조밀하게 분포해 있어서 기체교환이 효율적으로 일어난다. 장호흡 덕분에 미꾸리는 물이 마른 진흙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포유류의 장 끝에 있는 직장 역시 혈관이 조밀하게 분포해 있다. 직장의 혈관을 통해 약물을 빠르게 흡수시키는 약제가 바로 항문을 통해 넣는 좌약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포유류 직장에서 장호흡이 일어날 리 없지만(장 내부 공간은 산소가 희박하다) 항문을 통해 산소를 넣어준다면 미꾸리와 마찬가지로 산소가 장벽의 혈관을 통해 녹아들 수 있지 않을까. 

 

 

○ 중산소부족으로 죽는 조건에서도 살아남아 .
생쥐 장벽의 혈관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현미경 이미지다. 특히 직장에는 혈관이 조밀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장내 산소 농도가 높을 경우 기체교환이 꽤 효율적으로 일어나 장호흡이 가능하다.  도쿄의대 제공
생쥐 장벽의 혈관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현미경 이미지다. 특히 직장에는 혈관이 조밀하게 분포하기 때문에 장내 산소 농도가 높을 경우 기체교환이 꽤 효율적으로 일어나 장호흡이 가능하다. 도쿄의대 제공

다케베 교수팀은 이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공기의 산소 농도가 8%로 치명적인 저산소 조건에서 비교실험을 했다. 대기의 산소 농도는 21%이므로 38% 수준이다. 생쥐는 산소 농도 8% 조건에서 11분 만에 절반이 죽었다. 이때 항문으로 산소 기체를 주입해주자 절반이 죽는 시간이 18분으로 늘어났다. 장호흡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연구자들은 이 방법을 ‘항문을 통한 산소 기체 장호흡(g-EVA)’이라고 이름 지었다.

 

연구자들은 미꾸리의 장 말단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직장의 점막과 일부 세포를 벗겨내 얇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장벽이 얇아 혈관이 가까이 분포하면 산소가 더 많이 녹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약물을 처리해 장벽을 얇게 만들어주자 생쥐의 75%가 관찰 기간인 50분이 지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포유류에서도 장호흡이 일어날 수 있고 저산소 조건에서 생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장호흡 효율을 높이겠다고 장벽을 손상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산소 기체 대신 산소를 머금은 액체를 주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액체는 기체보다 산소 농도가 훨씬 더 높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혈액으로는 실패했지만
연구자들은 산소 기체 대신 인공혈액으로 쓰이는 과불화탄소에 산소를 포화시킨 액체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해 장벽을 손상하지 않고도 장호흡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산소분자는 과불화탄소 용액(perfluorochemicals)에서 물에서 보다 훨씬 많이 녹는다. 유럽생리학저널 제공
연구자들은 산소 기체 대신 인공혈액으로 쓰이는 과불화탄소에 산소를 포화시킨 액체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해 장벽을 손상하지 않고도 장호흡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산소분자는 과불화탄소 용액(perfluorochemicals)에서 물에서 보다 훨씬 많이 녹는다. 유럽생리학저널 제공

이들이 주목한 물질은 한때 인공혈액으로 쓰였던 과불화탄소다. 탄화수소에서 수소원자 자리를 불소원자가 대신한 분자인 과불화탄소는 독특한 물성을 지니고 있다. 과불화탄소 분자끼리 서로 좋아하지 않아 농도가 높아져도 끈적거리지 않는다. 대신 산소 분자나 이산화탄소 분자는 잘 달라붙는다. 따라서 과불화탄소는 뛰어난 산소 운반체로서 혈액의 헤모글로빈을 대신할 수 있다. 

 

놀랍게도 1989년 일본 녹십자(한국의 녹십자와는 다른 회사)는 과불화탄소로 만든 인공혈액 플루솔-DA를 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일본과 미국에서 의료현장에 공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 대비 부작용이 커서 결국 5년 만에 승인이 취소됐다. 그 뒤에도 몇몇 회사들이 과불화탄소 기반 인공혈액을 개발했지만, 경제성이 안 맞거나 임상시험이 진행되지 않아 답보상태다.

 

다케베 교수팀은 산소를 잔뜩 머금은 과불화탄소 용액을 항문을 통해 생쥐의 직장으로 주입했다. 그리고 산소 농도 10%인 저산소 조건(죽지는 않는다)에서 대조군과 비교했다. 그 결과 직장에 소금물을 넣은 대조군은 숨이 차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처치군은 꽤 돌아다녔다. 실제 혈액 내 산소분압을 봐도 동맥과 정맥 모두 처치군이 더 높았다. 

 

연구자들은 생쥐보다 덩치가 훨씬 큰 돼지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산소를 머금은 과불화탄소 용액 400㎖를 직장에 넣어주자 역시 동맥혈 산소분압이 70.8mmHg로 대조군의 57.2mmHg보다 13mmHg 더 높았다. 또 일정 시간이 지나 산소분압이 떨어지면 용액을 빼내고 새 과불화탄소 용액을 주입해 다시 올렸다.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해도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 혈액에도 상당량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물질이므로 예상한 결과다. 연구자들은 이 방법을 ‘항문을 통한 산소 액체 장호흡(l-EVA)’이라고 명명했다.

 

한편 처치군의 혈액 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대조군에 비해 낮았다. 산소를 뱉아 낸 과불화탄소 분자가 혈액에서 확산해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붙잡은 결과로 보인다. 폐에서 일어나는 기체교환과 기능적으로 대등한 작용이 직장에서도 일어난다는 말이다.

 

논문에 소개된 실험은 여기까지이지만 연구자들은 돼지 결과를 보건대 사람에서도 장호흡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고 별다른 부작용도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다.

10여 년 전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세균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이 장내 우점종이 돼 심한 설사 등으로 고생하는 환자들(미국에서만 매년 수만 명이 죽는다)에게 건강한 사람의 똥을 이식해 장내미생물 균형을 되찾아 증상을 없애는 대변미생물총이식 방법이 소개됐을 때 생각이 난다. 얼핏 보면 21세기의 첨단 의료현장에 도입하기에는 너무 무식한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생태학의 관점에서 병원균을 바라본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도다. 대변미생물총이식은 2013년 미국 FDA에서 승인이 났고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도입돼 실행되고 있다. 

 

대변미생물총이식을 넘어서는 발상의 전환으로 개발한 항문을 통한 산소 액체 장호흡(l-EVA)은 의료현장에 적용하기 쉽고 안전해 보인다. 일정 시간 주기로 액체를 바꿔주는 시스템을 갖춘 장비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확실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의료 인프라가 부실한 가난한 나라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폐 기능 저하를 비롯해 여러 후유증이 생길 수 있는 인공호흡기 부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빠르게 자리 잡지 않을까. 

 

2000년대 들어 ‘제2의 뇌’라고 불리고 있는 장에게 ‘제2의 폐’라는 별칭도 붙여줘야겠다.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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