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이산화탄소, 화학원료 '나프타'로 바꾼다

2021.05.25 15:14
대전 유성 한국화학연구원 플랜트 실증 시연
김석기 한국화학연구원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 선임연구원(왼쪽)이 25일 대전 유성구 화학연 실험실에서 이산화탄소를 나프타로 변환하는 플랜트 실증설비를 소개하고 있다. 대전=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김석기 한국화학연구원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 선임연구원(왼쪽)이 25일 대전 유성구 화학연 실험실에서 이산화탄소를 나프타로 변환하는 플랜트 실증설비를 소개하고 있다. 대전=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25일 대전 유성 한국화학연구원의 한 실험동. 성인의 키만한 압력 용기가 여러 관로로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플랜트 설비 앞에 한 연구원이 다가갔다. 연구원이 설비에 연결된 계기판을 조작하자 설비에 연결된 작은 관에서 노란색 빛을 띤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이 액체는 석유를 이용해 만드는 기초 화학 원료인 나프타다. 도시가스나 합성비료 혹은 휘발유를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하는 필수 소재다.

 

나프타는 원유를 거대한 증류탑에서 끓인 후 성분을 분리해 얻는다. 하지만 설비 주변에는 원유를 담은 용기나 냄새 같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김석기 화학연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이 나프타는 원유가 아닌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이용해 만들었다”며 “탄소중립으로 화석연료 이용이 줄어도 나프타는 계속해 필요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원료를 만들면 탄소를 줄이면서도 석유 없이도 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이산화탄소를 300도의 낮은 온도에서 수소와 물과 반응시켜 나프타로 전환하는 5kg급 파일럿 플랜트 실증설비를 25일 공개했다. 전기원 화학연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장은 이날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5kg급 생산 플랜트를 가동해 이산화탄소로 나프타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며 “이산화탄소를 나프타로 전환하는 공정에 사용하는 촉매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기존 공정 대비 효율을 37% 높였다”고 말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석유화학 기초원료다. 한국은 세계 4위 석유화학 산업 국가로 연간 5400만t 나프타를 국내에서 소비하고 이를 통해 6100만 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정부가 2050년까지 제시한 탄소중립 목표 도달을 위해서는 화석연료 대신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활용해 나프타를 생산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이용(CCU)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되면서 남는 에너지를 이산화탄소를 나프타와 같은 기초원료로 전환하는 데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중이다. 덴마크는 풍력을 활용해 2030년까지 25만t 액체연료 생산 공정을 완료하겠다 선언하고 연간 이산화탄소 85만t 감축을 목표로 잡았다. 전 단장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주로 유럽에서 30여 개의 실증플랜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아우디와 포르셰 등도 풍력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를 디젤 연료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화학연 제공
이산화탄소를 다른 화학 원료로 변환하는 공정은 간접전환 방식과 직접전환 방식으로 나뉜다. 화학연 제공

연구팀은 재생에너지 활용을 위해 2017년부터 이산화탄소를 낮은 온도에서 바로 반응시켜 나프타로 만드는 공정을 개발해 왔다. 이산화탄소를 유용한 화학 원료로 바꾸는 공정은 800도 이상 높은 온도에서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바꾼 다음 다시 유용한 물질로 전환하는 ‘간접전환’이 주로 쓰인다. 간접전환은 이산화탄소를 원료로 바꾸는 수율이 높은 대신 많은 에너지가 드는 게 단점이다.

 

반면 직접전환은 300도의 낮은 온도에서 활용할 수 있어 짧은 시간 빠르게 가열해 공정을 돌릴 수 있다. 수급이 불안정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하기 유리하다. 직접전환의 에너지 효율이 간접전환보다 10% 높은 70~75%이고 이산화탄소 감축률도 7% 높은 것도 장점이다.

 

연구팀은 전환 효율이 낮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코발트를 원자단위로 철과 합금시킨 촉매를 개발하고 나프타 전환 효율을 기존 16%에서 22%로 끌어올렸다. 김 선임연구원은 “코발트는 탄소 결합을 분해하고 철은 탄소를 다시 결합시키는 역할을 했는데 이를 원자 정도 작은 단위에서 결합시키는 방법을 찾아내 고성능 촉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촉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ACS) 촉매’에 올해 2월호 표지논문으로 발표됐다.

 

이산화탄소를 전환하는 기술은 아직은 부족한 경제성을 채우는 게 관건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은 수소가 필요한 만큼 수소 가격에 영향이 크다. 대신 수소기술이 빠르게 개발되는 만큼 병행하면 2050년에는 원유에서 만드는 나프타 원료와 비슷한 가격을 보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전 단장은 “2050년 그린수소가 보급되면 합성나프타 가격은 t당 140만 원 정도로 예측된다”며 “국제유가 시나리오상 가격인 t당 147만 원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전 단장은 “후속사업을 만들어서 연간 20t 실증 플랜트를 만들어 실증하고 2030년에는 연간 8만 4000t 공정 상용화에 도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플랜트 설비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비커에 받고 있다. 대전=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연구팀이 플랜트 설비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비커에 받고 있다. 대전=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이날 화학연은 이산화탄소 전환 플랜트 외에도 개발 중인 다양한 탄소중립 기술을 소개했다. 황영규 화학연 화학공정연구본부장은 “화학연은 탄소중립 전략 기술을 에너지 효율 공정개선과 자원 재처리를 통한 탄소 소비 감축 두 가지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 원료인 올레핀의 생산에 드는 에너지를 30% 낮춘 기술은 2017년 롯데 타이탄 말레이시아 공장에 적용돼 연간 40만t을 생산하고 있다.

 

발전소 배기가스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장태선 화학연 미세먼지융합화학연구단장은 “울산에 하루 10t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규모 실증 플랜트를 만들어 발전소로부터 얻은 이산화탄소를 일산화탄소로 전환해 주변 화학단지에 공급하는 연구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이미혜 화학연 원장은 “1990년대부터 이산화탄소를 활용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지만 그동안 사회적 요구가 크지 않았고 경제적 효과가 높지 않아 기업 연계가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제 사회가 바뀌어가고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기초 연구로 수행한 CCU 기술 산업화가 실제로 탄소중립에 반영되도록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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