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진화] '남 잡이가 제 잡이'

2021.05.30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위계 서열에 기반한 기존의 협력적 조직보다 앞으로는 새로운 협력 시스템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남 잡이가 제 잡이'라는 속담이 있다. 남을 해치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격언은 여러 문화에서 발견된다. 


일본에서는 주로 '人を呪わば 穴二つ(히토노로와바 아나후타츠)'라고 하는데, 남을 저주하는 자는 구덩이를 두 개 파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려고 하면, 결국 자신의 무덤도 파야 하는 법이다. 영어로는 ‘Harm set, Harm get’ 혹은 ‘Harm watch, Harm catch’라고 하는데, 남에게 해를 입히려면 자신도 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It’s a good horse that never stumbles and a good wife that never grumbles"라는 말도 있다. 절대 쓰러지지 않는 좋은 말도 없고, 절대 불평하지 않는 좋은 아내도 없다는 뜻이다. 

 

 

○ 부산물로서의 협력
의사나 변호사는 단독으로 개업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모든 변호사가 ‘파트너’이며, 모든 의사가 ‘원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의사나 변호사는 단독으로 개업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모든 변호사가 ‘파트너’이며, 모든 의사가 ‘원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은 비친족 협력, 즉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과도 높은 수준의 협력을 하는 독특한 종이다. 그래서 협력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일단 동물의 세계에 관찰되는 비친족 협력의 상당수는 사실 부산물이다. 즉 결과적으로는 협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행동 양상이 진화하면서 부수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종에서 단독 사냥을 하면 이득이 2, 비용이 1이라고 하자. 남는 것은 1에 불과하다. 작은 동물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이 힘을 합쳐 사냥을 하면 이득이 무려 10이라고 하자. 비용을 제하고, 반씩 나누어도 4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사기꾼 녀석이 힘을 합쳐 사냥을 하겠다고 하고, 상대의 사냥감을 몰래 훔친다고 해보자. 상대는 사실상 혼자 사냥을 하는 것이니 이득이 2인데, 이걸 몰래 훔쳤으니 고스란히 이득만 독차지할 수 있다. 물론 상대는 비용만 1을 치르고 손해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득은 2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협력하는 편이 유리하다. 


여왕개미 여럿이 모여서 개미집을 만드는 일이 있다. 모두 비친족이다. 천하를 나눌 수 없는 법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여왕개미가 처음 ‘건국’을 하는 시기에만 일어나는 일이다. 일개미도 없고, 기반도 없다. 그러니 여왕개미는 서로 힘을 합쳐 얼른 개미집을 건설한다. 그러나 알을 낳아 일개미가 부화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피를 튀기는 싸움이 시작된다. 서로 알을 훔치고 상대의 둥지를 침략한다. 완전한 승리가 선언될 때까지 싸움이 계속된다. 천하를 두고 싸운 조조와 유비, 손견도 한 때 긴밀히 협력했었다. 


협력의 이득이 엄청나게 큰 경우라면, 천하의 악당이라도 협력한다. 협력 자체를 위한 본성은 필요 없다. 각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을 움직일 뿐이다. 그 결과가 부산물로서의 협력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사회가 대개 이렇다. 고도성장기의 한국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노력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혼자 노력하는 것보다 힘을 합치는 편이 각자에게 훨씬 유리했다. 모두 조직을 위해, 회사를 위해,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성공의 과실은 분명 공평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혼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득이 컸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자원은 고갈되고, 경쟁이 치열해진다. 협력을 통한 이득이 기만 행동을 위한 이득과 동일해지면, 협력은 중단된다. 기만 행위자의 이익이 커지면서 협력 행위자의 이익이 빠르게 감소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기만 행위자의 이익도 감소한다. 등쳐먹을 녀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협력 행위와 기만행위가 모두 사라지고, 단독 플레이어만 남게 된다. 어쨌든 혼자 노력하면 소소한 이득이라도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소확행이 판치는 사회는 분명 협력적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생태적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가피한 변화다. 

 

 

협력, 그리고 세 가지 부류
개미들이 나방에 일제히 달려들어 포획하는 모습. 플로스원 제공
개미들이 나방에 일제히 달려들어 포획하는 모습. 플로스원 제공

협력이 무조건 손해인 상황은 협력이 무조건 이득인 상황만큼이나 드물다. 소확행 사회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협력하고 있다. 물론 조건 없는 협력은 아니다. 협력의 이득이 막대한 환경이라면, 조금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참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도 얻는 것이 무조건 크기 때문이다. 협력의 이득이 거의 없는 환경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잘 해주더라도 헤어지는 편이 낫다. 힘을 합쳐봐야 사이좋게 배를 곯는 상황이라면, 훗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길로 떠나야 한다.


협력의 이득이 아주 크지도, 아주 작지도 않다면 상황이 묘해진다. 협력을 하는 쪽이 유리하지만, 살짝 속여서 이득만 가로채는 편이 더 유리하다. 아마 이런 상황이라면 대략 세 종류의 부류가 있을 것이다. 


첫째, 어떻게든 협력을 강요하여 큰 이득을 얻으려는 부류. 단독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든 끌어들이고(평판), 배신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제재), 그래도 배신하면 어떻게든 혼내주려고 하는 부류다(처벌). 대신 서로 협력하면 이득은 확실하게 나눈다(보상).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야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군대다. 람보가 아닌 이상, 혼자서 총 들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군대는 이중삼중의 협력 강요 시스템을 작동한다. 협력하면 훈장을 주고 진급도 시켜준다. 배신하면 강력한 처벌이다. 제 1차 대전 당시 일부 군인의 임무는 놀랍게도 아군을 저격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진격하지 않는 아군을 등 뒤에서 쏘았다.


아무래도 회사는 군대처럼 할 수 없다. 그래서 대개 보상을 준다. 바로 월급이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월급을 주지 않으면 다들 떠날 것이다. 호혜적 이득도 제공한다. 회사가 잘 되면 인센티브도 주고, 승진도 시켜준다. 회사의 직급은 사회적 평판을 통한 이득을 제공한다. ‘무슨 회사의 무슨 직급이요’라는 타이틀 자체가 어느 정도는 환금성을 가진 평판이다. 중매를 볼 때도 유리하고, 이직을 할 때도 필요하다. 그래서 월급이 적은 회사일수록 인센티브를 강조하고, 인센티브도 주기 어려우면, 직급 인플레가 일어나고, 그것도 어려운 회사에서는 처벌을 남발한다. 만약 회사가 직원에게 고소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협력을 유지할 다른 수단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것이다. 


둘째, 기만 전략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어쨌든 협력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이러한 협력에 기생하여 이득만 취하고 비용은 치르지 않으려는 것이다. 첫 번째 부류가 있기 때문에, 두 번째 부류가 있을 수 있다. 아무도 협력하지 않으면, 속일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총을 겨눈 병사가 있는 한, 기만 전략의 비용은 실로 엄청나다. 법과 제도의 상당 부분은 기만적 개체에 관한 처벌이다. 전과가 있거나 신용도가 낮으면, 살아있어도 어느 정도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 투명 인간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협력의 이득이 낮아질수록, 기만행위에 대한 처벌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벌이 강할수록 협력의 이득도 낮아진다. 이득의 상당 부분을 처벌에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독재 국가다. 독재 사회는 사실상 이익을 일부 계층이 독점하기 때문에 협력을 위한 호혜성이 일어나기 어렵다. 사회적 평판도 일부 집단이 독점하기 때문에 간접 호혜성도 일어나기 어렵다. 그나마 자원이 풍부하면 보상을 통해 협력을 강제할 수 있지만, 성장이 정체된 독재국가라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처벌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이득은 도리어 줄어든다. 처벌도 비용이기 때문이다. 점점 기만적 전략을 사용하는 개체가 늘어난다. 물론 독재자의 입장에서 기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탈출한다. 혹은 법과 제재를 무시하는 ‘기만적 개체’가 다수를 점하게 된다. 흔히 혁명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필연적 결과다.


셋째, 단독 행동을 작은 이익이라도 확실하게 취하려는 부류. 만약 협력을 강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협력의 이득도 크지 않다면 개체는 그냥 혼자서 작은 이득을 확실하게 취하려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건 분명 협력이 아니다. 물론 협력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친족성에 바탕을 둔 협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짝 협력, 즉 사랑하는 파트너도 협력한다. 그외 비친족 협력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강제력이든 보상이든 그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결과적인 협력의 이득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단독 생활을 하는 동물 종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사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도 그리 높은 수준의 협력성을 보이지는 않았다. 대개는 친족성에 기반한 협력이었다. 신체적 우월성이나 정신적 탁월함이 약간의 리더십을 유발했지만, 공고한 사회적 지위나 계급으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다들 상당히 평등하다. 


현대 사회에서도 제한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바로 전문가 집단이다. 의사나 변호사는 단독으로 개업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의대나 법대, 그리고 이후의 수련 과정은 엄격한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지만, 일단 동업자 자격을 얻게 되면 협력의 이득이 급감한다. 공동 개업의 이득은 그저 하나 더하기 하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작은 로펌이나 작은 병원에 가보면 알 것이다. 모든 변호사가 ‘파트너’이며, 모든 의사가 ‘원장’이다. 예외적으로 큰 규모의 로펌이나 큰 병원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위계적 로펌, 위계적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면, 점점 독립적 자원 획득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미래 사회의 협력
아마존의 물류 로봇 ′키바′. 아마존 제공
아마존의 물류 로봇 '키바'. 아마존 제공

미래 사회의 협력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게임이론의 페이오프 매트릭스를 가정해보면 대략 예측할 수 있다. 뇌피셜로 소설을 한 번 써보자. 지금부터는 논픽션이다. 


생태적 적소를 이미 포화되어 새로운 개척지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달이나 화성이 있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물론 지리적 개념의 적소가 전부는 아니다. 새로운 산업이나 새로운 학문도 새로운 적소를 열어젖힐 수 있다. 과거의 기계공학이나 화공학이 그랬고, 최근의 반도체나 분자생물학이 그랬으며, 지금의 닷컴 혁명이나 전기차 기술이 그렇다. 


그러나 과도하게 빠른 속도로 적소 포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득이 순식간에 한계 수준으로 수렴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전히 억만장자가 나오고 있지만, 상대적인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적소가 줄면 처음에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협력을 통한 독점적 지배자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그것마저도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흥미롭게도 최근의 기술적 혁신이 이러한 구석기 시대의 생태적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에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기술과 지식을 파는 직업이 평등주의적 동업자 집단을 유지했다면, 이제 어느 누구나 그런 지위를 얻을 수 상황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대학 교육은 점점 인터넷에 기반한 수평적 지식 시스템으로 넘어가고 있다. 대학교의 거대한 도서관은 사실상 고서를 쌓아둔 창고로 전락했고, 활자화된 지식 대부분은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다. 음악은 물론이고, 방송도 이제 개인화되고 있다. 개인 유튜브 방송의 이득은 기성 방송국의 이득에 비해 아주 작지만, 개인당 순이익은 증가하고 있다(의미있는 유튜브 활동을 하는 개인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생산, 물류, 관리 등의 비용으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었던 여러 산업 영역은, 이제 플랫폼 구축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사실상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나 1인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이득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흐름도 보인다.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모든 사람은 거대 유통업체의 배달 직원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도 이제 거대 의료회사나 법률회사의 일개 직원이 되고 있고, 사실상 모든 사람은 거대 기업의 직원이 되거나 아니면 국가로부터 생활보조금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분명 그런 움직임도 있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다. 끊임없는 인수 합병으로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다. 


앞으로는 막대한 보상 혹은 엄청난 처벌을 가할 수 있는 일부 조직을 제외하면, 개인의 협력을 강제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위계 서열에 기반한 기존의 협력적 조직은 낮은 이익/비용 환경을 극복하기 어렵다. 너무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봉건적 의미의 협력 시스템은 점점 사라지고, 한 사람이 나머지 인류 전부를 각자 상대하는 새로운 협력 시스템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예전처럼 응집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로 이산할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나 ‘모래알’같은 집단이었지만, 그래도 각자 제법 잘 살았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이산이 가능할까? 우리는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구석기 시대의 평등주의적 삶의 방식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신석기 초기의 엄청난 수준의 위계적 계급에 기반한 전제 사회로 회귀할까? 예전에는 국가의 종이었고, 이제는 거대 기업의 종이 되는 것일까? 역설적인 말이지만, 협력자가 적어지고 배신자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점점 평등해질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갈 수도 있다. 집단 간의 경쟁으로 인해 배신자에 대한 처벌이 무한정 강화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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