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코로나 시대에 꿈자리가 사나워진 이유

2021.06.01 17:3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왜 꿈을 꿀까? 사실 이건 세 가지 질문이다.  ①뇌가 어떻게 꿈을 창조할까? ②꿈이 하는 기능은 무엇일까? ③이 기능이 충족되려면 왜 꿈을 경험해야만 할까? 이에 대한 짧은 답이다. ① 잘 모른다. ②잘 모른다. ③ 잘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 그럴듯한 답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꽤 근사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 안토니오 자드라 & 로버트 스틱골드, ‘When brains dream(뇌가 꿈을 꿀 때)’에서

 

코로나 1차 유행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는 좀 이상한 기사가 실렸다. 꿈자리가 사납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이라는 정신적 충격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질적인 대상임에도 전자현미경으로나 보여 사실상 추상적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유력한 설명은 집안에 갇혀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이 잠을 실컷 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잠은 몇 단계가 반복되며 진행된다. 즉 비렘수면 1~3단계와 렘수면이다. 렘(REM)은 빠른안구운동의 영문 머리글자로, 렘수면 상태에서는 감긴 눈꺼풀 밑에서 안구가 빠르게 움직인다. 

 

잠 초기에는 주로 비렘수면이지만 뒤로 갈수록 렘수면 비율이 높아진다. 그런데 꿈, 특히 내용이 황당한 개꿈은 주로 렘수면에서 꾼다. 평소 미국인들은 대체로 수면부족 상태였고 따라서 렘수면도 부족했지만 코로나 격리로 렘수면 시간이 크게 늘면서 덩달아 개꿈을 꾸는 시간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두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는 걸까.

 

 

○ 잠과 꿈의 존재 이유

 

학술지 ‘패턴’ 5월 14일자에는 코로나로 꿈자리가 사나워진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설명하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터프츠대 앨런발견센터의 신경과학자 에릭 호엘 교수는 이 논문에서 인공지능 이론을 가져다 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 ‘과적합뇌가설(overfitted brain hypothesis)’를 내놓았다. 이 가설에 따르면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 생활이 단순해지면서 과적합에 빠진 뇌의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개꿈을 많이 꾸게 됐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얘기하기에 앞서 잠과 꿈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우리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에 대해 무수한 이론이 나왔지만 2000년대 들어서야 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서 정교한 실험을 통해 옥석이 가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활동하지 않는 시간대(사람 같은 주행성 동물은 밤)에 은신처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있는 게 더 안전하고 에너지 소모도 줄인다는 진화론적 설명은 그럴듯해 보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말 그렇다면 잠들지 못하더라도 잘 쉬기만 하면 별일이 없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잠을 안 재우면 실험동물이 며칠 못가 죽기 때문이다. 자는 것과 쉬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라는 말이다.

 

지난 2013년 잠의 존재 이유를 밝힌 놀라운 발견이 보고됐다. 뇌에는 ‘글림프계’라는 독자적인 청소 체계가 있어서 깨어있는 동안 뇌가 활동하며 내놓은 쓰레기(노폐물)를 뇌가 스위치를 껐을 때(잘 때) 청소한다는 것이다. 잠을 못 자면 뇌에 쓰레기가 쌓여 죽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잠이 들면 바로 뇌를 청소하는데, 주로 비렘수면에서 진행되다. 수면 전반부에 비렘수면의 비율이 높은 이유다.

 

꿈에 대해서는 아직 잠만큼 결정적인 존재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수면연구자 매슈 워커 교수는 2017년 출간한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꿈의 중요한 기능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꿈은 일종의 ‘야간 요법’으로 낮 동안 겪은 감정적 고통을 없애준다.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급감하는 렘수면 때 낮에 겪은 사건의 변주인 꿈을 통해 감정을 자극하는 기억 경험을 재처리해 감정 균형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책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실험도 소개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싶다.

 

다음으로 꿈이 창의성을 자극하고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지적인 정보 처리 과정이라는 이론이다. 꿈을 통해 낮에 겪은 사건과 그동안 습득한 지식을 뒤섞어 더 나은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 완성은 인류의 지적 성취에 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대표적인 예다. 꿈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두려고 머리맡에 연필과 노트를 두고 자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그럴듯한 얘기다. 실제 인지 과제를 수행한 뒤 잠을 충분히 자고 다음 날 다시 시도하면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꿈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스틱골드 교수와 캐나다 몬트리얼대 안토니오 자드라 교수는 지난 1월 출간한 책 ‘When brains dream(뇌가 꿈을 꿀 때)’에서 우리가 꿈을 꾸는 이유를 명쾌히 말할 수는 없지만(이 글 앞에 인용한 문구) 그럼에도 그럴듯한 아이디어는 있다며 8장에서 ‘넥스트업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스틱골드 교수가 만들고 자드라 교수가 개선한 넥스트업 모형은 앞서 워커 교수가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에서 꿈이 창의성을 자극하고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지적인 정보 처리 과정이 라고 설명한 바로 그것이다. 워커는 책에서 스틱골드의 실험은 소개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넥스트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넥스트업(NEXTUP)은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한 네트워크 탐색’의 영문 머리글자다. 잠잘 때 이전에는 탐색하지 않았던 약한 관련성을 찾아 이를 강화해 기존 기억에서 새 지식을 추출하는 과정이다. 뇌가 기억들을 조합해 꿈이라는 서사를 만들어 깨어있을 때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관련성을 탐색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롭고 창조적이고 유용한 관련성이 나타날 수 있다.

 

 

치우친 데이터는 오히려 역효과
딥뉴런네트워크(DNN)에서 특정 유형의 데이터가 과도하게 입력되면 과적합 현상이 일어나 전반적인 과제 수행력이 떨어진다(왼쪽).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러 노이즈를 주입하는데, 그 가운데 드롭아웃은 일부가 손상된 데이터 세트를 입력하는 방법이다(오른쪽). 최근 나온 꿈 이론인 과적합뇌가설에 따르면 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엉성함이 DNN의 드롭아웃에 해당한다. arXiv 제공
딥뉴런네트워크(DNN)에서 특정 유형의 데이터가 과도하게 입력되면 과적합 현상이 일어나 전반적인 과제 수행력이 떨어진다(왼쪽).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러 노이즈를 주입하는데, 그 가운데 드롭아웃은 일부가 손상된 데이터 세트를 입력하는 방법이다(오른쪽). 최근 나온 꿈 이론인 과적합뇌가설에 따르면 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엉성함이 DNN의 드롭아웃에 해당한다. arXiv 제공

터프츠대 앨런발견센터 에릭 호엘 교수는 학술지 ‘패턴’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이론들이 나름 꿈의 기능을 잘 설명하고 있지만 꿈의 현상적 본질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능을 위해서라면 꿈이 이토록 황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 경험에 기반한 기억들을 이리저리 섞어봐도 결코 꿈 수준의 판타지가 만들어질 것 같지 않다. 

 

호엘 교수는 꿈의 이런 현상적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엉성함으로 꿈에 나오는 대상이나 상황은 디테일이 부족하다. 책이 있어도 읽을 수가 없고 전화기를 들어도 누를 수가 없는 식이다. 다음은 환각성으로 꿈에서는 일상의 견고함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꿈에 나온 친구가 어느 순간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내 방이 어느새 우주선 실내가 된다. 끝으로 서사성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든 이어지며 하나의 스토리를 이룬다. 꿈을 꾸면서 진짜라고 느끼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꿈이 깨면 꿈의 내용이 기억에서 급격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만일 깨어있을 때 경험을 이렇게 기억하지 못한다면 ‘기억상실증’이 아닐까 의심해야 할 것이다. 

 

호엘 교수는 꿈이 왜 이처럼 황당하고 금방 잊히는가에 대해 고민하다 최근 뜨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그 답을 찾았다. 다층구조 형태의 신경망을 기반으로 하는 머신러닝(기계학습) 분야인 딥뉴런네트워크(deep neural network. 이하 DNN)다. DNN은 사람의 뇌처럼 다량의 데이터를 입력받아 높은 수준의 추상화(일반화) 모델을 구축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DNN을 연구하다보니 뜻밖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특정한 유형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입력할 경우 오히려 일반화 기능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를 과적합(overfitting)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알파고가 기존의 기보를 학습할 경우 처음에는 실력이 빠르게 늘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이르고 오히려 적응력이 떨어진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데이터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찾는다는 한계 때문이다.

 

과적합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노이즈 주입(noise injection)’이다. 데이터로 노이즈를 입력하면 기능이 떨어질 것 같지만 특정 데이터의 영향력을 떨어뜨려 프로그램이 균형을 회복해 일반화 기능이 향상된다. 예를 들어 알파고끼리 대국한 초기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도 노이즈 주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호엘 교수는 꿈이 바로 뇌가 만들어낸 노이즈라고 주장했다. 하루하루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는 일상은 뇌를 과적합 상태로 만들어 낯선 상황에 마주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은 관련된 뇌의 특정 회로만 강화해 그 일은 아주 효율적으로 해내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마주하면 회로가 먹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잠을 잘 때 꿈이라는 형태로 노이즈가 주입돼 뇌가 이를 처리하며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시뮬레이션) 뇌의 과적합이 완화된다. 

 

꿈의 현상적 특징이 바로 DNN의 노이즈 주입의 특징이다. 꿈의 엉성함은 ‘드롭아웃(dropout)’ 이라는, 일부가 손실된 데이터를 입력하는 노이즈 주입 기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환각은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의 범주를 파괴하는 전혀 다른 유형의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 DNN에서는 ‘도메인 임의추출’이라는 기법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과적합뇌가설로 설명할 수 있는 꿈의 실험결과가 있을까.

 

호엘 교수는 테트리스 게임 같은 반복 과제 실험을 한 예로 들고 있다. 평소 테트리스를 하지 않던 피험자들이 하루 종일 테트리스만 하면 그날 밤 꿈에서도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꿈꾸는 도중에 깨워 꿈 내용을 묘사하게 하면 실제 테트리스 게임과는 많이 달랐다. 이는 그날 새로 접한 테트리스에 뇌가 과적합하는 걸 막기 위한 뇌의 대응이라는 것이다.

 

단어 암기 같은 단순한 기억은 수면부족이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반면 단어 연결성 같은 인지 과제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도 과적합뇌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단순 암기처럼 일반화가 필요없는 과제는 꿈이 별 도움이 안 되지만 규칙이나 패턴을 찾는 일반화 과제는 뇌가 꿈을 통해 과적합에서 벗어나면 더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을 그리는 화가’로 불렸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비키니섬의 세 스핑크스’. 원자폭탄 실험이라는 시사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과적합뇌가설에 따르면 이런 그림을 감상하면 뇌의 과적합을 완화할 수 있다.
‘꿈을 그리는 화가’로 불렸던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비키니섬의 세 스핑크스’. 원자폭탄 실험이라는 시사적인 주제를 다뤘다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과적합뇌가설에 따르면 이런 그림을 감상하면 뇌의 과적합을 완화할 수 있다.

 

꿈은 잠의 부가적인 기능

깨어있을 때는 주변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므로 노이즈 주입을 할 여유가 없다. 먹이나 천적을 앞에 두고 꿈 같은 상태로 행동한다면 굶어죽거나 잡아먹힐 것이다. 따라서 뇌가 오프라인 상태로 있을 때, 이를 테면 잠을 잘 때 노이즈를 만들어 경험하는 현상인 꿈을 진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물론 노이즈의 재료는 대체로 과거의 직간접적인 경험에서 나오지만 이것들의 예상치 못한 조합으로 만든 이야기인 서사는 무척 다채로워 특정 경험이 재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가운데 덩치가 호랑이만큼 커진 동네 강아지에게 계속 쫓기는 것처럼 내용이 너무 황당해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머리에 남는 걸 우리는 ‘개꿈’이라고 부른다.

 

호엘 교수는 꿈이 뇌의 시냅스 연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발견도 과적합뇌가설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 영향력은 깨어있을 때 경험에는 못 미친다. 현실의 경험은 단조롭더라도 꿈 덕분에 시냅스 가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논문 말미에서 호엘 교수는 꿈의 과적합뇌가설이 기존 가설들과 대립하는 게 아니라 해석에 새로운 차원을 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찌 보면 꿈에 대한 일반적인 해몽인 셈이다. 그리고 소설이나 영화, 예술 같은 허구의 세계가 ‘꿈의 대용물’로 어느 정도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마도 리얼리즘 계열보다는 판타지나 추상화처럼 ‘꿈같은’ 장르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