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수학과 문학의 수상한 만남, 시인 함기석

2021.06.19 07:00
 

미국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예술가에게 수학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뮤즈"라고 말했습니다. 타이슨은 왜 예술가에게 수학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실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천재들은 예술가면서 동시에 수학자, 물리학자였습니다.


함기석 작가는 한양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시인으로 변신해 2009년 박인환문학상부터 2020년 이상시문학상까지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 작가에게 수학과 예술의 차이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채널이 여러 개인 사람.’ 


함 작가는 주변 사람이 자신에 대해 표현한 말 중 이 표현이 가장 와닿는다고 합니다. 수학과를 졸업해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여러 문학 장르를 아우르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죠. 함 작가는 시인이자 동화작가입니다. 시를 쓸 때는 최소한의 언어를 사용해 표현하는 능력을 발휘하고 동화를 쓸 때는 이야기를 만들어 풀어냅니다. 작품의 대상이 성인인지 청소년인지에 따라 시에 사용하는 언어(시어)와 내용도 다르게 합니다. 


함 작가는 처음에는 다양한 채널을 옮겨가면서 작품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사람, 사물, 역사적 사건 등에서 새로운 것을 포착하고 그것을 시와 이야기로 엮어서 전달하는 역할은 어떤 채널이든 본질적으로 같다고 봤습니다. 그때부터는 여러 개의 채널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상상을 돕는 기하학


함 작가는 “수학의 여러 분야 중에서 기하학을 가장 좋아한다”며 "수를 다루는 분야보다 공간을 상상하는 일이 더 흥미롭다"고 말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도형의 위치와 형상을 연구하는 분야인 위상 수학을 혼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함 작가는 위상 수학을 통해 여느 작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합니다. 전혀 다른 도형으로 여겨지는 정육면체와 구를 위상 수학에서는 똑같은 도형으로 보듯, 어떤 관점을 가지는지에 따라 사람도 세상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함 작가는 “기하학을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것처럼, 수학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색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작가로서 갖게 된 새로운 생각을 사람들, 특히 청소년에게 알려주고 싶다고도 말했습니다. 기하학의 차원 개념을 도입해 ‘오렌지 기하학’이라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서로 영향을 미치는 수학과 시

 

함기석 작가가 2020년 10월 괴산 청안초등학교에서 수학과 동시를 접목하는 방법을 강연했다.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제공
함기석 작가가 2020년 10월 괴산 청안초등학교에서 수학과 동시를 접목하는 방법을 강연했다. 충청북도진천교육지원청 제공

많은 사람들은 문학과 수학을 전혀 다른 분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함 작가는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문학이,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수학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학처럼 논리적인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 받을 때 시를 읽으면 기분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상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문학을 공부하는 건 중요하다고 함 작가님은 강조합니다. 


시인처럼 전문적으로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수학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함 작가도 시나 동화를 쓰다 보면 한 줄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때 수학 문제를 풀면 잠시 문제의 논리에만 몰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를 풀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함 작가는 종종 수학의 난제에 대해 생각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난제를 풀 수는 없지만 현실의 문제를 잊고 머리를 환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 작가는 "지금도 수학, 과학에 대한 열의는 끊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지난해부터 하루에 2시간씩 물리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주에 대해 상상력을 펼치는 시를 쓰는데, 너무 상상과 관념만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정확한 이론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알고 싶어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막상 공부하고 나니 작품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함 작가는 “창작하는 사람들이 수학, 과학 도서를 읽고 사고하면 작품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함기석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수학과를 졸업하고 돌연 시에 입문한 이유


"고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며 답을 내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거나 모험하는 걸 좋아해 탐험가나 천문학자를 꿈꿨습니다. 천문학 같은 과목을 공부할 때 수학이 필수라는 점도 수학을 좋아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은 고등학교 때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아서 공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 짬짬이 시간을 내서 시집이나 소설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갖게 된 취미였는데 점점 습관이 됐고 더 깊게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시인과 작곡가, 철학자 중 많은 사람이 수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인이 된 후에도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수학도 틈틈이 공부했습니다. 

 

Q. 작품을 쓸 때 어디서 영감을 얻나

 

어느 날 약속이 있어서 자주 가던 카페를 들렀는데 평소와 다르게 비가 왔다면 그것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어요. 이런 경험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처럼 새겨져 작품에 영감을 줘요. 이렇게 평소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것이 시의 소재가 되죠. 또 책과 TV를 보는 등 간접적인 경험에서 재미를 느낄 때도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실체가 있는 직간접적인 경험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영감을 줄 때도 있어요. 꿈이나 기억처럼 현실에 없는 것들이 바로 그런 거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는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씌워서 제가 받은 영감을 표현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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