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피부에 흉터 남기지 않고 나을 수 있을까

2021.06.22 15:16
살다보면 피부에 이런 저런 상처가 나고 때로는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흉터 없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 건 피부 연구자들의 꿈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살다보면 피부에 이런 저런 상처가 나고 때로는 흉터가 남기 마련이다. 흉터 없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 건 피부 연구자들의 꿈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일 못하는 사람이 다친다고 한 달 쯤 전 간단한 작업을 끝내고 보니 왼손 엄지손가락의 살갗이 벗겨져 있다. 그런데 한쪽 끝이 여전히 온전한 피부에 이어진 상태라 좀 애매했다. 다행히 피는 안 났지만 벗겨진 피부가 꽤 두께감이 느껴져(종이 두세 장 정도) 손톱깎이로 잘라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표피의 각질층이 아니라 표피 전체가 벗겨진 것 같다. 참고로 표피는 아래서부터 기저층, 유극층, 과립층, 투명층, 각질층으로 이뤄져 있다. 

 

아마 피부가 뭔가에 문질리면서 표피가 밀려 찢어지며 표피와 진피의 경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혈관은 진피까지만 분포하므로 피가 나지 않은 것이다. 벗겨진 표피를 드러난 진피 위로 덮는다고 해서 두 층이 다시 붙는 건 아니라 신경이 꽤 쓰였다. 벗겨진 표피가 각질화돼 손톱깍이로 없앨 때까지 일주일은 걸린 것 같다. 차라리 진피도 좀 다쳐 피가 나고 딱지가 생겼다면 뭔가에 닿거나 물이 묻을 걱정을 일찍 덜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지난 주 그림을 그리다 부주의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유화 물감이 묻었다. 휴지로 닦아내다 문득 지난번에 다친 부위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다친 흔적이 없다. 이상하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다친 건 왼쪽이다. 그래서 왼손 엄지손가락을 보니 놀랍게도 역시 다친 흔적이 없다. 두 엄지손가락을 나란히 두고 자세히 살펴봤지만 둘 다 피부가 매끈하다. 한 달 전 다쳤다는 게 거짓말 같다.

 

피부에 상처가 날 때 표피까지만 다치면 깨끗이 낫고 진피가 손상돼야 흉터가 남는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내 몸 곳곳에는 어릴 적 피를 흘린 상처의 흔적인 흉터가 남아있다. 특히 무릎에는 크고 작은 흉터가 여럿 보인다. 어릴 적 피부 재생 능력은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겠지만, 표피냐 진피냐가 흉터 여부에 결정적인 변수라는 말이다.

 

문득 지난 4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피부 상처 흉터에 관한 논문이 떠올랐다. 재미있을 것 같아 시간이 나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논문은 놀라운 결과를 담고 있었다. 진피가 손상돼도 흉터 없이 낫게 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결과가 임상에 적용되면 웬만한 상처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나을 수 있을 것이다. 

 

상처 흉터는 진화의 결과
피부는 표피(epidermis)와 진피(dermis), 피하조직(hypodermis)으로 이뤄져 있다. 표피만 손상되면 깨끗하게 낫지만 진피까지 다치면 회복 과정에서 흉터가 남는다. 위키피디아 제공
피부는 표피(epidermis)와 진피(dermis), 피하조직(hypodermis)으로 이뤄져 있다. 표피만 손상되면 깨끗하게 낫지만 진피까지 다치면 회복 과정에서 흉터가 남는다. 위키피디아 제공

그런데 흉터는 정상적인 피부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몸에 흉터가 있는 독자들은 자신의 흉터를 보면서 아래 언급이 맞는지 확인해보기 바란다. 기본적으로 흉터는 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세포외기질이 지나치게 많으면서도 부실하게 조직화된 결과다. 세포외기질의 주성분인 콜라겐 단백질의 섬유가 그물망 형태가 아니라 밧줄 다발 형태로 뭉쳐서 분포해 탄력성이 떨어지고 단단한 느낌을 준다. 

 

그뿐 아니라 흉터에는 털이나 땀샘 같은, 진피가 변형된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흉터 표면을 자세히 보면 이들 구조가 없어 반들거림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통증이나 압력을 감지하는 신경계도 엉성해져 흉터 부분을 건드려도 감각이 둔하거나 이상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흉터는 피부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흉터가 작으면 보기에만 안 좋은 수준이지만 전신 화상 등으로 피부의 넓은 면적에 흉터가 생기면 체온조절 등 여러 생리 기능이 떨어진다.

 

놀랍게도 임신 24주까지 태아는 진피가 손상되는 상처를 입어도 흉터를 남기지 않고 회복될 수 있다. 임신 24주 이후 이런 재생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다른 포유류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그렇다면 포유류의 발생 과정에서 왜 이런 퇴행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상처가 났을 때 완벽한 재생보다는 흉터가 남는 게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상처로 인한 감염이나 기능 저하로 죽을 확률을 줄이기 위해 빨리 회복되는 게 중요했고 그 길을 찾다보니 어쩔 수 없이 흉터가 남게 된 것이다. 장마철 축대에 금이 갔을 때 빨리 메꾸는 게 중요하지 완벽하게 복원한다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입장이 바뀌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회복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1~2주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대신 얼굴에 난 상처가 흉터를 남기지 않고 낫는다면 이 치료법을 택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상처가 났을 때 임신 24주 이전의 방법대로 회복하는 길을 찾는 게 오늘날 피부 과학자와 의학자의 꿈이다.

 

0년 전인 1971년 양의 태아에서 상처가 흉터없이 치유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그 뒤 사람에서도 24주 이전 태아까지 그러다가 이후 이런 능력을 잃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유류 상처 치유 흔적 유무의 미스터리가 50년 만에 풀렸다. ‘생의학공학 연감’ 제공
50년 전인 1971년 양의 태아에서 상처가 흉터없이 치유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그 뒤 사람에서도 24주 이전 태아까지 그러다가 이후 이런 능력을 잃는 것으로 밝혀졌다. 포유류 상처 치유 흔적 유무의 미스터리가 50년 만에 풀렸다. ‘생의학공학 연감’ 제공

 

섬유아세포의 변신 막아야

피부에 있는 여러 세포 가운데 섬유아세포(fibroblast)가 상처 회복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그런데 섬유아세포도 여러 유형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스탠퍼드대 마이클 롱가커 교수팀은 지난 2015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En1이라는 전사인자 유전자를 발현하는 섬유아세포인 EPF가 흉터 형성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평소 피부 진피에는 이 유전자를 발현하지 않는 섬유아세포인 ENF가 더 많다. 따라서 흉터에 많이 분포하는 EPF의 기원을 아는 게 중요했다.

 

롱가커 교수팀은 6년의 후속 연구 끝에 마침내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상처가 났을 때 EPF 대신 ENF가 회복에 관여하면 흉터를 남기지 않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자들은 생쥐의 등에 상처를 낸 뒤 다양한 유전적 기법을 동원해 상처 부위에 형성되는 EPF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 결과 평소 진피에 분포하고 있던 ENF가 상처가 생기면 EPF로 바뀐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ENF는 상처의 어떤 신호를 감지해 성격이 바뀌는 걸까.

 

추가 연구 결과 신호의 실체는 물리적인 힘이었다. 상처로 인해 세포들끼리 서로 당기는 힘이 커지면 이를 감지하는 센서인 YAP 경로가 켜지고 그 결과 ENF의 잠자고 있던 En1이 활성화되며 EPF의 성격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진피가 손상돼 출혈이 생기면 혈액응고 반응이 뒤따르고 그 결과 상처 부위가 딱딱해지며 장력이 커지면서 YAP-En1 경로가 켜져 흉터가 남는 EPF의 속성 치유 과정이 유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YAP를 꺼 ENF의 En1이 깨어나지 못하게 하면 ENF의 느리지만 완벽한 치유 과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쥐의 등 피부에 깊은 상처를 내면 회복되는 과정에서 흉터가 남아 털이 자라지 않는다(위). 반면 YAP 억제제인 베르테포르핀(verteporfin)을 상처에 주사하면 흉터가 남지 않고 치유돼 다시 털이 자란다(아래). 사이언스 제공
생쥐의 등 피부에 깊은 상처를 내면 회복되는 과정에서 흉터가 남아 털이 자라지 않는다(위). 반면 YAP 억제제인 베르테포르핀(verteporfin)을 상처에 주사하면 흉터가 남지 않고 치유돼 다시 털이 자란다(아래).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YAP 억제제인 베르테포르핀(verteporfin)을 상처에 주사했다. 그 결과 ENF의 En1이 활성화되지 않아 EPF로 성격이 바뀌지 않으면서 정말 흉터가 남지 않는 방식으로 회복이 됐다. 한편 YAP나 En1의 활성을 억제하는 유전적 기법을 써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YAP을 억제하거나 그 표적인 En1을 깨우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다. 임상 적용에는 유전적 기법은 어려우므로 베르테포르민 주사가 유력해 보인다.

 

흥미롭게도 베르테포르핀은 황반변성 같은 심각한 안과 질환의 진행을 막는 용도로 이미 쓰이고 있는 약물이다. 베르테포르핀은 광감작물질로, 망막의 신생혈관에 주사한 뒤 파장 689㎚의 붉은빛 레이저를 쪼이면 활성산소를 내놓아 혈관을 파괴한다. 그런데 이 물질이 YAP 억제 효과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추가 언급이 없지만 베르터포르핀을 피부 상처 치료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상처에 바르면 흉터가 남지 않는 피부연고를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참고로 현재 상처 연고는 항생제의 감염 차단과 함께 상처 부위를 촉촉하게 유지해 장력을 낮춰 YAP 신호를 약화시켜 흉터가 덜 생기게 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진피는 표피와 접한 유두진피층과 그 아래 망상진피층으로 이뤄져 있다. 진피가 상처를 입으면 망상진피에 있는 섬유아세포(reticular ENF)가 EPF로 성격이 바뀌면서 콜라겐을 과도하게 만들어 밧줄다발처럼 뭉치게 해 흉터로 남는다(위). 상처가 나도 YAP를 억제하면 ENF가 그 자체로 치유에 관여하면서 흉터 없이 온전하게 낫는다(아래). 사이언스 제공
진피는 표피와 접한 유두진피층과 그 아래 망상진피층으로 이뤄져 있다. 진피가 상처를 입으면 망상진피에 있는 섬유아세포(reticular ENF)가 EPF로 성격이 바뀌면서 콜라겐을 과도하게 만들어 밧줄다발처럼 뭉치게 해 흉터로 남는다(위). 상처가 나도 YAP를 억제하면 ENF가 그 자체로 치유에 관여하면서 흉터 없이 온전하게 낫는다(아래). 사이언스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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