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부실학회, 장롱특허 그리고 출연연

2021.07.01 11:00

각국의 과학기술체제는 그들이 발전해 온 역사적 경로와 시대적 맥락 속에서 성립된 최소한의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 과학기술체제 또한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내재하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과학기술체제 개혁이 대부분 실패한 이유는, 정치권력이 과학기술체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박정희식 체제에서 기원한 한국 과학기술체제는 군사독재정권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경로를 밟아 왔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과학기술체제에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 박정희식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부실학회 파동과 양적평가의 함정

 

 

2018년 여름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계의 치부가 국민 앞에 드러났다. 사이비 학술단체 와셋과 오믹스 등이 운영하는 가짜 학술지와 부실 학술대회에 참석한 한국인 목록을 전수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 와셋에 이름을 올린 한국 학자는 4227명, 기관은 272개로가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실학술지와 부실학회 이용이 단지 소수가 아닌 한국 과학기술계에 퍼져있는 광범위한 관행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놀라운 사실은 서울대가 부실학회 이용 학자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는 지난 2018년 부실학회가 문제가 되자 전국 238개 대학, 4대 과학기술원, 26개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울대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다. 2019년에는 당시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였던 조동호 KAIST 교수가 부실학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물러나는 일도 발생했다. 부실학회 파동은 과학기술자의 수준과 상관 없이, 국내 과학기술 생태계 전반에 퍼져있는 어떤 질병적 징후를 암시한 사건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에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평가지표가 지나치게 실적을 정량적 지표로만 평가하다보니, 본인들도 할 수 없이 부실학회라도 참석해 지표를 채우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변명이 될 수 없는 논리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과학기술자들 대부분은 가짜학회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연구 현장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적평가에 대한 연구현장의 불만을 귀담아 들을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양적평가의 함정 때문에 현장 연구자 간에 실질적인 연구 결과물를 내기보다 지표만 달성하면 연구의 질은 상관 없다는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실 학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은 BK21플러스 사업단에 속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이 사업 성과 지표로 국제 학회참가를 명시해둔 것에서 비롯됐다. 연구재단은 실제로 학생들이 참석한 학회가 부실학회인지 진짜학회인지 구분할 능력조차 없었다. 연구자들은 실적만 채우면 되니, 해외 휴양지에서 열리는데다 발표조차 필요 없는 학회에 참석하고 재단은 이 결과를 정부에 보고한 것이다.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연구재단의 무능, 관료주의가 만난 결과로 가짜학회 파동이라는 참사로 이어진 셈이다.

 

부실학회 파동이 터졌을 때,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연구개발(R&D) 예산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연구 평가 방법은 전혀 발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단순히 연구자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 지난 수십년 동안 매년 터지는 대학 교수들의 대학원생 연구비 착복이나 인권탄압 문제처럼 도돌이표 대응에 그치게 된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연구재단 등의 연구비 관리기관이 연구 현장에 적합하면서도, 국가 차원의 발전에 도움이 될 평가지표개발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 크다.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최근 수십년간 질적 도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관료주의에 찌든, 게다가 현장과 괴리된 평가 관리체계 때문이다.


장롱특허와 출연연의 어두운 그림자


얼마전 한 신문에 ”한국이 세계 2위, 참담한 R&D···장롱특허가 혈세 먹어치웠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최근 5년간 출연연이 출원한 약 4만건의 특허 가운데 1등급으로 분류될 만한 특허는 단 한개도 없었다는 것이다. 즉, R&D 예산 규모 면에서는 세계 2위에 오른 한국이지만, 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출연연의 역량은 그 위상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관료주의에 잠식된 연구개발 평가지표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연구자의 성과가 실질적인 기술이전과 연구개발 능력의 발전으로 이어졌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 갯수라는 양적평가로 안이하게 관리해온 문제가 한계를 드러내는 셈이다. 논문의 과학논문인용색인(SCI) 지수만으로 교수와 연구원을 평가하던 국내 대학의 R&D 능력이 한계에 이른 것처럼, 특허갯수만으로 연구역량을 평가하는 연구재단과 과학기술 관료들의 순진무구함이 국민 혈세를 의미 없는 장롱 특허 양산에 낭비하게 만든 것이다.

 

출연연의 장롱특허와 기술이전 부진을 지적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매년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오면, 출연연의 혈세낭비가 지적되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처방하는 대안이 제시된 적은 없다.

 

한국 연구개발의 두 주요 주체인 대학과 출연연은 모두 연구개발능력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정체되어 있다. 연구개발비 규모에서 세계2위인 한국에서, 이제 국민들은 이들에게 연구개발능력에 대한 책임을 묻게될 것이다
한국 연구개발의 두 주요 주체인 대학과 출연연은 모두 연구개발능력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정체되어 있다. 연구개발비 규모에서 세계2위인 한국에서, 이제 국민들은 이들에게 연구개발능력에 대한 책임을 묻게될 것이다

 

해방이후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견인한 건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정책이었다. 그 중심엔 1959년 문을 연 원자력연구소로 상징되는 국공립연구소,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개원 이후 설립된 다수의 출연연이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가 연구 역량을 확보하게 된 것은  대학이 아니라 출연연 덕분이었다.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국가 주도의 하향식 과학기술 정책은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정부에 귀속된 출연연이야말로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후발주자이던 한국이 세계와 경쟁할 R&D 역량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초석이었다. 기업이 R&D 대열에 합류한건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한 시대부터다. 당시 신군부는 출연연을 통폐합하고 연구의 자율성보다 연구소의 효율적 운영을 내세웠다. 연구자에게는 연구 역량을 위해 자율성이 필요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자율적으로 변화를 감내해야 하는 한국 출연연의 ‘자율성의 비자율적 기초’는 바로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대학이 한국 사회에서 R&D의 한 축을 담당하기 시작한건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이후다. 한국 R&D 역사는 국공립연구소에서 시작해 정부 출연연구기관, 기업 연구소, 대학 연구소의 순서로 발전해왔다. 

 

연구개발능력의 강화나 기술의 사업화가 목적이 아닌 특허와 논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한국 출연연의 연구개발체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연구개발평가체제의 혁신만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연구개발능력의 강화나 기술의 사업화가 목적이 아닌 특허와 논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한국 출연연의 연구개발체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연구개발평가체제의 혁신만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을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한국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견인해온 출연연 역사는 55년이 다됐다. 반세기 동안 출연연은 분명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했고, 과학기술 역량의 강화를 위해 노력해온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반세기 전 출연연이 설립될 당시와 달리, 지금은 국가 주도만으로 혁신을 달성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의 민간 우주기업인 스페이스X가 화성 탐사를 주도하고, 구글의 인공지능(AI) 회사 딥마인드가 AI 연구를 주도하는 지금, 출연연의 역할은 분명히 재고돼야 한다. 

 

과학계에서 출연연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건 벌써 20년이 더된 일이다. 1999년 출연연을 독일식 연구회로 통합하는 내용의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면서다.  문제는 연구 자율성을 화두로 급조된 연구회 체제가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 과기정통부 수장이 된 임혜숙 장관만 해도 장관 후보자가 되기 불과 3개월전 출연연 전체를 관리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NST의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임 장관이 연구회 이사장에 임명된지 수개월만에 이사장 직을 미련없이 던지고 장관 후보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연구회가 처한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국의 출연연은 시대에 뒤떨어진 채 R&D 역량을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역량 강화를 어렵게 하는 짐이 되어가고 있다. 출연연 내부에서도 어떻게 체제를 개혁해야 하는지 오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출연연 개혁은 정권마다 마치 폭탄돌리기처럼 절대 건드리지 못하는 금기의 영역이 되고 있다. 한국의 출연연 체제는 중심 없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 체제가 도약하려면 '장롱특허'로 상징되는 출연연의 정체성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이 R&D 역량 강화에 제대로 사용되도록 평가체제 마련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출연연의 건투를 빈다.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지만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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