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우리는 딱 하나이기보다 여러가지다"

2021.07.24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아이들을 모아놓고 무작위로 그룹을 지어 한 그룹에는 '독수리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또 다른 그룹에는 '사자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독수리팀에 속한 아이들은 같은 독수리팀 아이들이, 사자팀에 속한 아이들은 사자팀 아이들이 각각 더 외모도 출중하고 성격도 좋고 운동도 잘 하고 똑똑하며 더 도덕적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했다. 서로 누가 누군지 잘 모르면서 어쨌든 우리팀 사람들이 상대팀보다 더 다방면에서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 사람들은 더 여러가지 측면에서 자신과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반면 외집단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실 그들 개개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자신과 많이 다르다고 단정짓는다. 그러다가 아무 이유 없이 서로를 차별하고 적대시하면서 '아군 대 적'이 되어 싸우는 일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사람에 대해 어떤 정보도 주지 않는 아무 의미 없는 구분, 예컨대 손톱 길이, 가짜로 만들어낸 성격 분류, 역시 가짜로 만들어낸 그림 취향 같은 것으로 팀을 나눠도 “우리 집단 사람들이 더 우월하고 나와 더 공통점이 많으며 저 쪽 집단 사람들은 열등하고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현상이 나타난다.


최소 집단 패러다임,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집단을 나누기만 하면 갑자기 외집단을 향한 편견이 생겨나고 새로 만들어진 의미 없는 그룹 정체성에 휘둘려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아주 쉽게 관찰된다. 


흔히 어떤 심각한 차이와 갈등이 먼저 존재해서 집단이 나뉘고 싸움을 시작하는 것 같지만, 반대로 집단이 나뉘어서 차이와 갈등이 생겨나고 싸움이 시작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소속 집단이 복잡하게 나뉘는 현대 사회에는(인터넷 커뮤니티나 팬덤끼리 부딫히는 수 많은 경우들) 후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이성적인 존재라면서 사람들이 꼬리표만 달리면 서로 물어뜯는 행동을 보이는 데에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분류'를 통해 세상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싶어하는 동물이고 그 과정에서 '차이'를 과도하게 지각하고만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리할 때도 용도 별로 분류해서 꼬리표를 달고 작은 서랍에 차곡차곡 나눠 두면 훨씬 정돈된 느낌이 든다. 우리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개념화 할 때도 여자 대 남자, 백인 대  유색인종 등 지역, 국가, 생김새, 출신, 역할, 성격 특성 같이 주로 눈에 잘 띄는 특성들로 사람들을 범주화 한다. 이런 범주는 오직 '편의'를 위한 것이어서 사실 정확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일단 어떤 사람을 그 부류로 정의해버리면 왠지 세상과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특정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과 다르게 사람들은 복잡 다양한 특성들을 동시에 여러가지씩 가지고 있고 이거 아님 저거로 잘 구분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딱 하나이기보다 여러가지다. 성별도 인종 구분도 딱 하나로 나뉘지 않는다. 또 주어진 다양한 역할에 따라 누군가의 자녀이면서 어디 직장인, 어디 출신, 어디 팬, 다양한 특기나 취미, 선호, 취향, 성격 특성 등등 슬쩍 떠올려봐도 족히 수십가지는 되는 굵직한 꼬리표들이 떠오를 것이다. 이 중에 딱 하나만 가지고 자신을 정의하라고 하면 그건 잘못된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보통 자신이나 모든 사람들은 딱 하나이기보다 여러가지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쉽게 만든 부류에 기대어 사람을, 심지어 자신을 쉽게 판단하는 일이 생긴다. 특정 분류에 대해 생각할 때는 마치 그것이 자신과 타인의 전부인 양 착각하고 만다. 예컨대 나는 독수리팀이면서 얼마든지 사자팀일 수 있고, 양이나 오이, 가지, 돌맹이이기도 한데 오로지 독수리팀이고 타인도 오로지 사자팀인 것처럼 생각하고 싸우는 일이 벌어진다. 


이렇게 지나치게 단순한 정체화가 문제라는 점에 착안해서 미국 듀크대의 새러 게이더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다양한 존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가급적 넓게 생각해보도록 했다. 예컨대 누군가의 좋은 친구이자 누군가의 이웃, 책 읽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공을 잘 던지는 사람, 케찹을 좋아하는 사람 등 자신을 폭 넓게 정의해보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사고의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창의성 테스트를 했다. 예컨대 작은 종이 상자를 보여주고 어디에다 쓸 수 있을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 결과 자신이 얼마나 '여러가지'인지 생각해 본 아이들은 그러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창의성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작은 상자의 용도로 햄스터 눈썰매를 떠올린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또 사진들을 보고 사람들을 분류하라고 했을 때, 자신이 얼마나 폭 넓은 존재인지 떠올린 아이들은 성별이나 인종 같은 획일적인 분류보다 미소의 크기, 사진 여백 크기 같이 좀 더 유연한 분류를 사용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의 정체성이란 많은 경우 내가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작은 서랍들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차이들, 흔히 차별을 정당화할 때 쓰이는 근거들 또한 많은 경우 지극히 임의적이고 사소한 것이다. 차이점을 생각할 때에도 실은 공통점이 더 많음을, 또 어떤 작은 차이 때문에 목숨 걸고 싸우기보다 훨씬 넓은 존재임을 기억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관련기사

Gaither, S.E., Fan, S. P., & Kinzler, K. D. (2019). Thinking about multiple identities boosts children’s flexible thinking. Developmental Science, 23, e0012871.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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