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립밤이 코로나 확산 막는다?

2021.08.29 17:33
해당 연구자 "립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없어"
국내에서 립밤을 입술에 바르는 것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에서 립밤을 입술에 바르는 것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립밤을 입술에 바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전파를 막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일부 언론과 온라인 게시판 등에 올라와 사실 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런 주장이 정부 산하의 출연연구기관이 제작을 지원하고 일부 언론을 통해 배포되는 외주제작 칼럼을 통해 제기됐는데 확인 결과 사용된 논리에 비약이 있고 해당 연구자도 사실과 다르다는 반응이어서 콘텐츠 검증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사이트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SNS)에는 "입술 립밤 코로나 전파 막는다?'라는 제목과 이와 유사한 제목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출처를 살펴보니 헤럴드경제가 지난 7월 31일 보도한 코로나19 관련 글을 가져온 내용이다. 검색을 해보면 지난 3월에도 비슷한 제목의 글이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는 지난 3월 3일 전자신문이 동영상으로 배포한 "[카드뉴스]립밤이 코로나19 전파 위험 낮춘다?"를 인용한 글들이다. LG상남도서관 등 포털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운용하는 일부 기관의 뉴스 코너에도 관련글이 올라와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 글들의 출처는 모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지난 2월 22일 배포한 주간 과학칼럼 'KISTI의 과학향기' 제3621호 '립밤이 침방울의 전파를 막는다?'는 글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칼럼은 "해가 바뀌지 않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하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의료계는 기본적으로 비말 형태의 침방울이 전파돼 감염이 이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주된 경파 경로가 침방울임을 밝히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칼럼은 이어 "비말에 의한 전파를 줄여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제기됐다"며 "바로 입술 보호제인 립밤을 바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코로나19를 퇴치할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임시방편으로나마 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보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칼럼은 립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근거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침은 두 입술 사이에 고여 있다가 입술이 열리면 일정한 침의 막이 형성되는데 입이 더 벌어지면서 침의 막이 얇아지다가 실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이때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공기의 흐름에 의해 분리돼 밖으로 날아간다고 소개했다. 

 

칼럼의 필자는 이어 “입술보호제인 립밤이 침방울의 형성을 4분의 1이나 줄인다”라는 마누 아브카리앙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실제로 아브카리앙 연구원팀은 지난해 10월 2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플루이드’에 초고속 카메라를 활용해 립밤을 사용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침방울 형성을 비교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같은 단어를 말했지만 립밤 사용자는 미사용자에 비해 침방울 형성 정도가 약 4분의 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효과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특정 발음에 한정된 연구 내용이다. 알파벳 ‘P’나 ‘B’와 같은 양순음에서만 침방울 생성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자음 소리에서는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또 립밤이 입술에 흡수됐다가 사라지면 침방울의 양도 금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럼은 이 연구 결과를 인용해 "불가피하게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입술에 립밤을 칠하는 것이 침방울의 형성과 전파를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그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립밤을 바르고 대화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해당 연구팀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브카리앙 연구원은 이메일을 통해 “립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며 “전파 완화를 위해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 정도라고 설명한 것이지 효율적 방법이라고 제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립밤을 입술에 발라서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것은 침소봉대에 가까운 과도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이다. 


아브카리앙 연구원은 이번 연구의 목적과 관련해 “물질의 변형과 움직임을 연구하는 분야인 ‘유변학’과 관련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침과 관련된 유변학이 전염과 관련될 수 있다는 있다는 아이디어를 준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강조했다.

 

해당 칼럼은 이와 별도로 대만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20초 이내의 짧은 대화 속에서 발생하는 침방울의 숫자가 한 번의 기침에서 배출되는 숫자와 비슷하다는 설명도 내놨다. 만에 하나 이런 상황이라면 립밤을 바르고 대화하기 보다는 대화를 가급적 자제하고 마스크 착용을 준수하는 것에 더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자칫 이런 정보를 통해 립밤을 바르고 대화하면 안전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데 연구기관이 제공하는 과학정보에 대한 검증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잘못된 뉴스가 생산되고 일부 언론사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채 확산되는 구조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감염병을 연구하는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립밤을 입술에 바르면 코로나19 전파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며 "설사 관련 연구가 있다하더라도 공중보건적 측면에서 아직 방역 전문가들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내용을 지금과 같은 혼란한 시기에 보도하는 것은 공익적 측면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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