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를 만드는 기업들](6) '백곰 미사일의 혼' 누리호에도 들어있다

2021.09.08 12:00
누리호 전자탑재시스템 개발한 단암시스템즈
1973년 국군의 날 행사에 선보인 백곰 미사일. 위키피디아 제공
1973년 국군의 날 행사에 선보인 백곰 미사일. 위키피디아 제공

한국의 첫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백곰(NHK-1)’은 국내 미사일 개발의 '효시'로 꼽힌다.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기초 과학기술력이나 산업적 기반이 전무하던 1970년대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다. 미사일의 개념 설계부터 제작에 필요한 수천 가지 부품을 직접 개발하고 시험해 계획 수립 6년만에 1978년 9월 충남 서해안 안흥시험장에서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되는 성과를 이뤘다. 백곰 개발 성공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국민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백곰의 개발 과정에서 쌓인 지식과 기술은 현무4를 개조해 얼마전 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국산 미사일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전문가들은 이와 별도로 당시 축적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술들은 이후 계속해서 발전해 올해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KSLV-2) ‘누리호’에도 적용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우주발사체와 미사일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일부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탄두에 폭발력이 있는 폭약이나 핵탄두를 장착하면 미사일, 인공위성이나 유인우주선을 싣고 있으면 우주발사체가 된다. 이런 이유로 미사일 기술이 발전한 나라들은 우주발사체 기술도 대부분 앞서 있다.  


국내 국방 항공우주 통신시스템 전문기업 단암시스템즈도 이런 사례의 전형을 보여주는 강소 기업이다. 항공기나 미사일 같은 비행체에 장착된 통신 장비와 항법∙항재밍 시스템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경기 안양시에서 만난 이성엽 단암시스템즈 대표이사는 “단암시스템즈의 기술은 항공 미사일 분야의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다"며 “백곰 미사일을 개발하던 때의 혼과 정신으로 누리호 개발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단암시스템즈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백곰 미사일 개발을 주도한 주역 중 한 명인 이경서 박사가 설립했다. 이 박사는 1970년대 당시 국내에는 몇 명 없는 기계공학 전문가였다. 서울대 공대를 1년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과학기술원연구원(KIST) 연구원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일하며 백곰 미사일 개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는 1985년 ‘단암전자통신’을 설립하고 이어 2001년 특수사업부를 따로 분리해 지금의 단암시스템즈를 세웠다.  김준석 단암시스템즈 체계사업본부 사업팀 부장은 “창업주 이경서 박사의 철학은 이익보다 기술 개발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이런 철학 하에 단암시스템즈를 설립하고 유도무기 분야에서 많은 연구개발을 해왔다”고 말했다.

 

 

우주발사체 누리호에 들어가는 원격측정 시스템.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과학계에 따르면 미사일에 들어가던 기술 중 우주발사체에 적용되는 기술은 상상 이상으로 많다. 발사체의 상태를 확인해 지상 관제센터로 보내는 원격 측정 시스템과 지상에서 쏜 레이더 추적 신호를 받아 응답 신호를 보내 비행 궤적을 알리는 추적 시스템(트랜스폰더), 발사체의 궤도 이탈 등 긴급상황이 벌어진 경우 인명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비행을 중단하는 비행 종단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공유하는 기술이 많은 이유는 미사일과 우주발사체가 둘 다 로켓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간혹 북한이 쏜 로켓을 두고 미사일이냐 우주발사체냐 혼선이 빚어지는 일도 이런 이유에서다. 북한은 1998년과 2009년, 2012년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인공위성을 로켓에 실어 발사해 우주발사체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이 북한 발사체에서 나온 위성을 정식 우주물체로 등록하는 등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사일로 규정했다. 국방부가 2007년 발간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이해'라는 책자는 "탄도미사일은 형상, 구성요소, 적용 기술이 우주발사체와 유사하다”고 정의했다. 다만 우주에서의 발사체 각도와 속도 등에서 미사일과 우주발사체는 차이가 난다. 

 

단암시스템즈는 원래는 유도무기와 관련된 통신과 항법·항재밍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왔다. 지금은 우주발사체에 들어가는 통신과 항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수십년 간 쌓아온 국방∙항공 우주 통신과 항법 분야 기술력을 자부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장사정포의 사정권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차기 다련장로켓 ‘천무’와 공대지 미사일 ‘천검’ 개발에 참여했다. 이 대표는 “해외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던 상당수의 제품을 국산화하였으며 정보 공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방위산업의 특성상 직접적으로 비교는 힘들지만 고객으로부터 해당 분야에서 해외 선진기업에 견줄만한 기술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단암시스템즈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의 인연은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1993년 첫 관측로켓 과학로켓(KSR-I) 개발 때부터 항우연과 협력하고 있다. 2013년 러시아와 공동 개발한 나로호(KSLV-I)에서 발사체 비행 궤적을 확인하는 ‘트랜스폰더’ 등 전자탑재시스템을 개발했다. 
 

단암시스템즈는 전체 직원 195명 중 123명이 R&D 인력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단암시스템즈는 전체 직원 195명 중 123명이 R&D 인력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이번 누리호 사업에서는 원격측정 시스템과 전력시스템, 비행종단 시스템, 추적시스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시스템은 모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신호를 지상과 주고 받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박훈 단암시스템즈 체계사업 본부장은 “높은 기술력과 신뢰성이 요구되는 누리호의 원격측정시스템, 안테나, 전력시스템, 비행종단 시스템, 추적시스템 개발에 참여했다”며 “누리호 전자 시스템에는 대부분 단암시스템즈의 제품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단암시스템즈가 이처럼 고도의 정밀도와 신뢰성을 강조하는 우주와 국방 분야 사업을 이어가는데는 탄탄한 인력과 장비, 연구개발(R&D)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라는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단암시스템즈는 전체 직원 195명 중 123명이 R&D 인력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 대표는 “R&D 인력을 통한 기술력 축적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새로운 분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며 “R&D 인력을 활용하여 기술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사업 다각화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단암시스템즈는 누리호에 들어간 전자탑재시스템 외에도 산업용 무인이동체, 생체모방로봇 등 사업을 점차 다각화하고 있다. 


단암시스템즈는 제조 설비는 물론 성능시험 설비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R&D와 제조, 검증까지 원활하게 이뤄지는 보기드문 체계를 보유하고 있다.  김 부장은 “높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관련 제조 설비를 모두 갖춘 것은 물론 제품을 수정∙보완하는 장비와 제조한 부품을 시험하는 챔버 7대도 보유하고 있어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체계는 항우연과 ADD, 여러 체계 업체 등 정부와 기업 등 주요 발주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됐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단암시스템즈 연구원들과 이성엽 대표이사(왼쪽에서 세번째), 박훈 본부장(오른쪽 끝).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단암시스템즈 연구원들과 이성엽 대표이사(왼쪽에서 세번째), 박훈 본부장(오른쪽 끝).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다만 중소기업에서 R&D 비중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이 대표는 “가장 힘든 것은 우수한 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며 “우주발사체의 경우 항우연의 나로호나 누리호 외에 수요가 거의 없어서 매출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단암시스템즈는 꾸준한 국방 분야와 우주 사업에 참여해오면서 2019년 매출이 470억원, 지난해에는 506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에는 매출 7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체 매출 가운데 항공우주 관련 매출은 전체의 약 10% 정도로 아직 미미하지만 누리호 후속 모델 개발과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에 따른 고체 우주발사체 개발 등에 거는 기대가 크다. 

 

윤한수 단암시스템즈 항공우주기술센터장은 “2025년 이후부터는 국내에서 연 1회 이상 발사체를 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우주 관련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국이 우주 발사체 서비스를 제공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과 중국에서는 우주개발이 한창이고 민간기업들도 큰 성과를 이뤄내는 등 우주산업 관련 미래 전망은 굉장히 밝고, 단암시스템즈도 이에 발맞춰 크게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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