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생활용품에 대한 불안, 소비자가 스스로 깨어나야

2021.09.15 12:00
외출이 어려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은 주로 인터넷 쇼핑을 즐긴다. 특히 부피가 크고 무거운 기저귀나 물티슈를 살 때 그렇다.
대한의사협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의 인식조사의 결과가 놀랍다.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조사와 판매사에 대한 불신이다. 소비자가 정부 기관이나 언론 보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합성 화학물질로 만든 제품은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믿는 소비자들도 많다. 제조사‧정부‧전문가‧언론이 제공해주는 정보도 신뢰하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의 국민건강보호위원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생활용품 안전성 인식조사’에 따르면 그렇다. 생활용품의 안전성에 대한 ‘보도준칙’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불신・미신으로 가득찬 어두운 정보감염(infodemic)의 늪에 빠져버린 소비자들에게는 백약이 무효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하고 밝은 상식의 세상이 필요하다.

 

정보감염에 시달리는 소비자

 

생활용품은 우리가 위생적이고 편리한 삶을 위해서 상당한 비용을 감수하면서 사용하는 제품을 말한다. 누구나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생활필수품도 있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기호품도 있다.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다양성과 소비량이 삶의 질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생활용품이 오히려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은 역설적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위생용품·세제·주방청소용품·화학용품이 모두 포함된다. 비누·샴푸·린스·치약·칫솔·세제·섬유유연제·살충제·방향제 등이 대표적인 생활용품이다. 화장지·티슈·물티슈·기저귀·생리대 등도 있다. 화장품·문구류·원예용품·애완동물용품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생활용품은 현대의 대량 생산 기술에 의해 생산되어 복잡한 유통망을 통해 공급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생활용품의 품질을 엄격하게 규제・관리한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공산품의 규격과 품질을 관리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국가기술표준원도 있고, 화장품을 비롯한 생활화학용품의 안전성을 관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있다. 생활용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의 안전을 관리하는 법과 제도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위해성이 확인된 화학성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용방법과 허용기준을 정해놓고 관리한다. 정부의 관리에 대해 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신뢰가 필요하다. 유해물질의 허용기준을 ‘안전기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한의사협회와 한국과학기자협회의 인식조사의 결과가 놀랍다.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조사와 판매사에 대한 불신이다. 소비자가 정부 기관이나 언론 보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생활용품의 안전성에 대한 정확한 보도를 찾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고 느끼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제공
한국과학기자협회 제공

결국 소비자가 생활용품의 위해성을 직접 경험하는 경우보다는 생활용품에 대한 정보감염(infodemic)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임이 드러난 것이다. 기업・정부・언론・전문가가 소비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법과 제도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비윤리적인 노이즈 마케팅과 언론의 선정적인 옐로 저널리즘이 더 이상 설자리가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규제 기관과 전문가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정보와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 소비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소비자가 깨어나야

 

생활용품에 대한 불안이 모두 남의 탓일 수는 없다. 소비자가 깨어나야 한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 지키겠다는 확실한 각오가 필요하다. 적어도 스스로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의 정체는 분명하게 파악하겠다는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은 언론과 인터넷의 엉터리 정보다 맡겨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소비자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기업・언론・전문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허황한 불로장생의 환상과 착각에 빠져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다’는 수준의 엉터리 광고에 속절없이 속아 넘어가고 있다. 친환경・무공해・유기농・만병통치를 앞세운 어설픈 미사여구의 유혹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생아에게도 안전한 살균제’라는 어처구니없는 광고를 앞세워 밀폐된 실내에 살생물질을 분무하라는 제조사의 사용법을 가려낼 판단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제품의 부패・변질을 막아주기 위한 ‘보존제’와 인체 발암성이 불확실한 ‘발암물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허용기준 이내의 보존제 사용을 용납하지 못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세균・바이러스・곰팡이의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보존제를 사용하지 않고 제조한 물티슈가 유통과정에서 부패해버린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술・담배・젓갈・숯불은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이지만, 햄・소시지 등의 적색육은 인체 발암성이 불확실한 ‘2A군’이다. 암은 장기적・지속적・반복적 노출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질병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생활용품을 스스로 만들어서 쓰겠다는 자세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화학 지식과 장비를 갖추기 어려운 가정에서 만든 비누와 화장품의 품질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비누 제조에 사용되는 수산화 소듐(양잿물)은 가정에서 사용할 이유가 없는 독극물이다.

 

생활용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정부 기관의 전문성・효율성・윤리성이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 기관을 맹목적으로 불신하는 자세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윤리적인 기업이나 엉터리 인터넷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언제까지나 다른 생물이 만들어놓은 천연물에 의존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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