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 고기

2015.01.28 18:00
[인류의 탄생 ④]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과학동아(일러스트 김정훈) 제공

 

어린이집에 다니는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초원에서 사자들을 제치고, 시속 30~40km로 달리는 아프리카 영양을 뒤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약 키가 유아 정도에 불과한 초기 인류가 고기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인류가 고기를 구하는 방법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사냥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구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 우선 인류가 언제부터, 왜 고기를 먹게 됐는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인류가 이토록 고기를 즐겨먹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거든요.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 식성이 다른 새로운 영장류 탄생
 
모든 동물은 고기를 좋아합니다. 육식동물은 고기만 먹을 수 있으니 당연하지만, 놀랍게도 초식동물이나 잡식동물도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좋아합니다. 인간 역시 고기를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지요.
 

고인류 화석 KNM-ER 1808의 단면. 뼈가 비정상적으로 굵어져있다. - 소미소니언 박물관 제공
고인류 화석 KNM-ER 1808의 단면. 뼈가 비정상적으로 굵어져있다. - 소미소니언 박물관 제공

1974년, 동아프리카의 유명한 고인류화석 발굴지 쿠비포라에서 이상한 화석이 하나 발견됐습니다. ‘ER 1808’이라고 이름 붙은 170만 년 전의 화석인데, 사망 시기를 전후로 뼈가 비정상적으로 굵어져 있었습니다(아래 사진). 인류학자들은 뼈에 출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혈이 일어난 이유로는 비타민 A 과다증을 꼽았고요.
 
이상한 것은 여기부터입니다. 비타민 A 과다증은 육식 동물의 간을 너무 많이 먹으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인류의 친척인 고릴라나 침팬지는 비타민 A 과다증에 걸릴 만큼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이들 유인원뿐만 아니라, 영장류는 대부분 채식 또는 준채식을 기본으로 합니다. 영장류는 8000만 년 전부터 주로 나무 위에서 살며 과일과 잎을 주식으로 했습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의 초기 영장류는 과일과 이파리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몸집이 비교적 작은 원숭이는 곤충이나 애벌레 정도 되는 동물성 단백질을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처럼 몸집이 큰 유인원은 거의 채식만 합니다. 거대한 몸집을 유지할 만큼 고기를 많이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경우, 고기를 좋아하고 가끔 고기를 구해 먹습니다. 집단으로 덤벼 들어서 비비원숭이를 잡아 먹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흰개미 굴을 살살 휘저어 달라 붙는 흰개미들을 후루룩 먹기도 합니다. 그래 봤자 침팬지가 먹는 고기의 양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습니다. 인간에 비하면 말이죠.
 
400만~500만 년 전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초기 인류도 다른 유인원처럼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큰 어금니와 깊숙한 턱뼈를 보면 많은 양의 음식물을 수없이 많이 씹어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육식보다는 채식을 주로 했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양의 열량을 얻어내기 위해서 고기는 조금만 먹어도 되지만 채소는 많이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초기 인류의 머리 크기는 침팬지와 비슷한 정도입니다. 이 역시 채식을 했을 거라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성 먹거리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그다지 복잡한 전략을 세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두뇌가 클 필요가 없습니다.

 

● ‘용감한 사냥꾼’이 아니라 ‘시체 청소부’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시작했다. - 동아일보 제공
초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시작했다. - 동아일보 제공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기 인류는 식성을 바꿔야 했습니다. 홍적세(약 258만~1만 2000년 전) 기간에 아프리카는 계속 건조해졌습니다. 숲이 점점 줄어들고 풀밭이 늘어났습니다. 식물성 먹거리는 경쟁이 점점 치열해졌습니다.
 
몸집은 현생 고릴라의 4분의 1정도지만 이빨은 고릴라 못지 않게 크고 강한 파란트로푸스가 숲지대에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파란트로푸스는 나무 껍질, 식물 뿌리 등을 먹을 수 있었지만, 초기 인류의 이빨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초기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동물성 지방, 즉 고기를 먹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고기를 구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초기 인류의 어른 키는 100cm 정도로, 오늘날의 서너 살짜리 인간 아이와 맞먹습니다. 사냥은 어림없습니다.
 
살아있는 동물을 잡기가 어려우면 죽어있는 동물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자는 막 죽인 사냥감의 내장을 배불리 먹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서 한숨 자러 갑니다. 사냥감은 내장만 제외하고는 나머지 고깃살이 그대로 붙어있습니다. 그걸 노리면 되겠죠.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사자가 물러가고 나면 이번에는 독수리 떼나 하이에나떼가 몰려듭니다. 독수리 한 마리는 선 키가 100cm 정도로, 초기 인류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게다가 두 날개를 쭉편 길이는 180cm가 넘습니다. 항상 떼지어 몰려 다닙니다. 절대로 만만히 고기를 빼앗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과학동아 제공
과학동아 제공

 

초기 인류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사자부터 독수리와 하이에나까지 모든 경쟁자들이 내장과 고기를 다 발라먹고 버리고 간 뼈를 노리는 방법입니다. 팔다리의 뼈 속에는 골수가 있습니다. 머리뼈 속에는 뇌가 있습니다. 골수와 뇌는 모두 순수한 지방 덩어리입니다. 이를 노리는 경쟁자는 벌레와 박테리아 정도입니다.
 
그런데 팔다리의 뼈나 머리뼈는 매우 단단합니다. 특히 팔다리 뼈는 먼 훗날 무기로도 사용할 정도로 굵고 단단합니다. 이빨로는 이런 뼈를 깰 수 없습니다. 초기 인류는 돌로 뼈를 깨서 골수를 빼먹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뼈 깨는 돌은 점점 그럴싸 한 모양새를 갖춘 ‘석기’가 되었습니다. 호모 하빌리스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도완 석기(돌 두 개를 마주쳐 그 돌 자체나 떨어져 나온 조각에 날을 세운 석기)는 이렇게 뼈 깨는 돌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육식이 부른 또다른 진화
 

왼쪽은 170만 년 전의 여인 KNM-ER 1808. 오른쪽의 330만 년 전 여인 루시와 비교해 보면 두뇌와 몸집이 훌쩍 커졌다. - 치매와 맞바꾼 육식 제공
왼쪽은 170만 년 전의 여인 KNM-ER 1808. 오른쪽의 330만 년 전 여인 루시와 비교해 보면 두뇌와 몸집이 훌쩍 커졌다. - 이상희 교수 제공

고기를 먹기 시작하자, 인류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름진(고지방)식품 섭취에 힘 입어 초기인류의 두뇌가 점점 커진 것입니다. 두뇌는 제작비와 유지비가 많이 필요한 기관입니다. 그에 걸맞는 영양 섭취가 필수입니다.
 
정기적으로 확보한 고지방 고단백 식품은 몸집도 키웠습니다. 초기 인류는 400만~500만 년 전 두뇌 크기가 현생 침팬지와 비슷한 400~500cc 정도였습니다. 200만~300만 년 뒤 호모 하빌리스 때는 750cc로 커졌습니다. 하지만 몸집은 여전히 100cm 전후로 작았습니다. 200만 년 전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했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두뇌가 1000cc까지 커졌고 몸집 역시 170cm 정도까지 자랐습니다. 몸집도 크고, 두뇌도 큰 인류 조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인류는 큰 두뇌와 큰 몸집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뛰어난 전략과 체력, 그리고 석기 덕분에 잡을 수 있는 짐승 수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으려면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초식에 길들여져 있는 몸은 기름진 음식을 소화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인류는 ‘아포지방단백질’이라는 물질을 이용해 기름진 음식을 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아포지방단백질은 마치 세제처럼 지질에 결합한 뒤 이를 혈관에서 치워 피를 깨끗하게 합니다. 특히 혈중 지단백질을 낮추는 데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아포지방단백질 유전자는 150만 년 전에 등장했습니다. 이 때는 바로 호모 에렉투스가 큰 두뇌와 몸집을 하고 아슐리안 돌도끼(석기의 양쪽 면을 가공해 다듬은 발전된 석기)를 만들어내는 시점입니다. 인류는 큰 두뇌와 큰 몸집을 가지고 사냥을 제대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기는, 인류가 유전적인 변화를 거친 뒤에야 비로소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었습니다.

 

● 치매와 맞바꾼 육식

 

istockphoto 제공
istockphoto 제공

피를 깨끗하게 해서 인간의 육식을 가능하게 하는 아포지방단백질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뇌졸중 등 치명적인 노년기 병과 관련이 많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라서는 아포지방단백질 유전자가 병의 직접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험한 유전자를 왜 갖고 있을까요.

 

노화 과정을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다양한 학설 중에 ‘플라이오트로피 가설’이 있습니다. 플라이오트로피 현상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형질에 관여하는 현상입니다. 어떤 유전자가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그 유전자가 노년기에는 해롭다면 사라져야 맞겠지만, 아동기와 청년기에 유익했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포지방단백질 E 엡실론4도 마찬가지입니다. 혈중 지방단백질을 치우는 유익한 기능이 있기 때문에 노년의 치매나 뇌졸중과 관련이 있어도 계속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은 공짜가 아니라, 노년에 치러야 할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얻은 적응 능력인 셈입니다.


 

※ 동아사이언스에서는 미국 UC리버사이드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탄생’을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12-2013년 과학동아에 연재되었던 코너로 식인종, 최초의 인류, 호빗 등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교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 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