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로 포장해 철학으로 버무린 로봇 영상물

2015.03.15 18:00
[과학기자의 문화산책] 영화 ‘채피’가 주는 메시지

※기사의 일부는 스포일러임을 밝힙니다.

 

 

UPI 코리아 제공
UPI 코리아 제공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의 의도가 이해되질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스토리는 황당했고, SF영화란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설정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최근 개봉한 영화 ‘채피’ 얘기다.

 

로봇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기에 극장을 찾았다. 로봇 기사를 자주 쓰고, 인공지능에 대한 질문도 주변에서 자주 받는 터라 ‘감성을 가진 로봇’이 등장한다니 적잖은 흥미가 일었다. 비슷한 느낌을 받은 가진 관객들이 많았는지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는 듯 해 보인다. 15일 현재 누적관객수 25만4710명을 기록해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섰다. 북미에선 6일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로봇만 옹호하면 악당도 선인?

 

영화는 경찰로봇 ‘스카우트’ 중 한 대(22호)가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생기는 여러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로봇은 어린아이처럼 굴다가 말을 배우고, 모든 사물에 호기심을 갖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춘다. 두려움을 알고, 화를 낼 줄도 아는 진짜 감성을 가진 로봇으로 묘사된다.

 

기계가 감정을 갖게 된다면 그 기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논란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나올 만큼 해묵은 것이다. 1970년대 일본 만화영화 ‘아톰’에선 인간과 똑 같은 감정을 느끼는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권리를 갖고 함께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우리나라 만화작가 김준범 씨는 1980년대에 ‘기계전사 109’란 작품을 통해 로봇들이 인간들에게 ‘동등한 권리와 수명을 달라’며 투쟁을 벌이는 모습을 그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화두를 던진 방식이 꼭 이렇게 어이없는 설정이어야 했는가에 대해선 큰 의구심이 든다. 감정을 가진 로봇 ‘채피’는 배터리 문제로 불과 며칠뿐인 시한부 인생을 산다. 하지만 맹렬한 속도로 지식을 익히기 때문에 불과 2~3일 사이에 언어를 익히고 여러 가지 일을 배운다. 이 갱단들이 채피를 얻어낸 목적은 단 하나. 현금수송차를 털어 큰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채피는 설계자인 디온(데브 파텔)의 가르침대로 살인을 하지 않으려 하고, 채피를 데리고 다니던 악당들은 ‘이건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일’이라고 속여가며 채피를 이용한다. 사실 이 악당들은 손쉽게 살인을 자행하고, 약탈을 일삼는 등 명백한 악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와 선인처럼 묘사된다. 그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딱 하나다. 로봇을 친구로 대하고 아껴 줬으면 선인, 그렇지 않으면 악인으로 구분짓는 이분법적 설정은 대단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채피가 갱단 일원인 ‘양키’와 교류하고 있는 모습 - UPI 코리아 제공
채피가 갱단 일원인 ‘양키’와 교류하고 있는 장면. - UPI 코리아 제공

●곳곳에 헛점… 과학적 검증 아쉬워

 

영화를 보는 도중 곳곳에서 드러나는 과학적 허점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배급사는 이 영화를 SF라고 홍보하고 있다. SF란 ‘Science Fiction(사이언스 픽션)’ 즉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작품이란 뜻이다. 스토리는 허구지만 작품에 나오는 과학과 기술은 허구여선 안 된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을 우겨 넣으면 이건 SF가 아니라 ‘판타지’가 된다. 마법과 마술, 기공이 난무하는 비과학적 스토리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두 발로 걷는 로봇 경찰의 등장까지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이미 인간형 보행 로봇은 세상에 나와 있고, 여기 적용할 만한 다양한 기초, 원천기술도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대형 연구기관이나 기업이 어느 날 총력을 집중해 이런 로봇을 개발하고 발표한다고 가정하면 이해하지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문제는 채피가 자아를 갖게 되는 설정이다. 사람이 어떻게 의식과 자아를 갖게 되는지는 아직 기초과학 단계에서도 규명되지 않았다. 해부학적, 생화학적으로 인간이 사고를 하는 원리가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건지가 의문이다. 하물며 이런 정보를 전혀 엉뚱한 로봇에게 옮겨 넣으면 그대로 의식이 전달된다는 설정은 너무도 턱없이 느껴졌다.

 

심지어 영화의 말미에선 디온이 총격에 맞아 사망할 지경에 이르자 의식을 로봇에 옮겨 넣고 ‘정신’만을 살려내는 장면도 나온다. 이 과정에선 의식을 뽑아내기 위해 머리에 쓰는 헬멧을 이용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뇌파를 읽을 때 쓰는 EEG(electroencephalogram) 장치나 뇌혈류를 읽을 수 있는 근적외선 장치, 혹은 뇌의 미세자기를 측정하는 뇌자도 장비 등으로 보였다.

 

애초에 이런 장비는 사람 뇌가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반응하는지 그 단편적인 정보만 알 수 있다. 복잡한 기억과 경험을 모두 전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물며 컴퓨터로 만들어진 로봇의 두뇌를 사람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은 절차를 통해 의식을 복사해 내는 모습에선 헛웃음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감독이 관객들을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로봇인지 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을 로봇의 몸에 집어넣고, 인간의 머릿속을 USB메모리 하나에 저장해 뒀다가 이를 다시 꺼내어 다른 로봇에 옮겨 넣고 살려내는 장면에서, 모든 관객들은 마냥 신기하고 흥미진진하게만 느꼈는지 자뭇 궁금해진다.

 

채피는 복잡하고 황당한 스토리로 영화에 나름의 철학을 담는 것으로 유명한, 닐 블룸캠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급변하는 과학기술에 따라 로봇이 할 일, 로봇이 가져야 할 권리 등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만 하다.

 

 

채피는 악당 동료들이 시키는 대로 시민들의 차량을 파손하고 약탈을 돕기도 한다 - UPI 코리아 제공
채피는 악당 동료들이 시키는 대로 시민들의 차량을 파손하고 약탈을 돕기도 한다. - UPI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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